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혼자 사는 강윤월(83)씨의 집에는 2016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강씨가 소속된 친구모임방 ‘매실’ 회원 5명이 매일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강씨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강씨의 집을 찾아갔을 때 5인분의 보리밥이 담긴 밥솥이 따스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강씨는 옆에 앉은 오석태(77)씨 다리를 가리키며 “병원은 갔다 왔냐”며 걱정했다. 강씨는 “내 집은 사람들의 정거장”이라며 “건강은 기본이고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니 멀리 사는 자식보다 더 의지가 된다”고 웃음 지었다.
복지당국의 고독사 관리망 곳곳에 빈틈이 보이는 요즘, 이웃공동체를 복원해 1인가구 고립을 막으려는 시도가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초어르신행복e음센터의 ‘친구모임방’ 사업이 대표적 모범 사례다. 이 사업은 홀로 사는 노인의 집을 사랑방으로 재탄생시킨다. 모임장이 주 1회 이상 자신의 집에 노인 회원들을 초대하고, 이들은 송편 빚기, 노래자랑 등 원하는 활동을 직접 짜고 실행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지자체는 모임방의 수도세, 전기세 등 공과금을 지원한다. 노인들이 관리 대상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주체가 되는 셈이다.
2015년 독거노인 5명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6년 만에 180명이 참여하는 40개 모임으로 거듭났다. 사업을 고안한 하백선 센터장은 “규모가 큰 복지관은 인원이 많아 일일이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서로의 마음까지 잘 알 수 있는 규모의 모임이라야 어르신들이 심리적 안정도 얻고 복지관에서 챙기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임방에서 만나 친구가 된 이들은 서로의 위험 신호도 감지해낸다. 3개월 전 모임방 회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천유진(70)씨는 그의 부고를 모임방과 사회복지사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천씨는 “요즘 너무 수척해 보여 병원을 가보시라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가끔 술 드시고 ‘심심해 전화했다’ 하면 ‘주무시고 내일 봐요’라고 답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친구모임방 사업은 '고독사 제로' 등 가시적 성과도 내고 있다. 서초구에 따르면 2019~2021년 서초구에선 고독사(사망 이후 72시간 이상 지나 발견)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기간 서울에선 2019년 69건, 2020년 51건, 지난해(1~10월) 67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다른 자치구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로 주목받는 사업이 됐다. 센터는 향후 모임방을 최대 1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 증가 등 고독사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고독사 예방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민간 참여 유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관리망 밖 고독사를 막기 위해선 지역사회 자원의 동원이 필수”라며 “슈퍼주인, 반찬가게 등 일상에서 위기 신호를 감지하면 곧바로 사회적 도움이 전해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지킴이가 돼야 고독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