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이 곧 골목 복지관" 친구모임방이 고독사 막는다

입력
2022.01.26 14:00
[복지망이 놓치는 고독사]
서초 어르신행복e음센터의 '친구모임방'사업
"매일 안부 묻고 건강 챙겨… 밥숟가락 알 정도"
공동체 살려 고립  방지… 서초구 '고독사 제로'


“친구모임방 하나하나가 골목 복지관이에요. 고독사 인원이 10명에서 5명으로 줄어든다면 그 자체로 사람을 살리는 만남이죠.”
하백선 서초어르신행복e음센터장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혼자 사는 강윤월(83)씨의 집에는 2016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강씨가 소속된 친구모임방 ‘매실’ 회원 5명이 매일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강씨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강씨의 집을 찾아갔을 때 5인분의 보리밥이 담긴 밥솥이 따스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강씨는 옆에 앉은 오석태(77)씨 다리를 가리키며 “병원은 갔다 왔냐”며 걱정했다. 강씨는 “내 집은 사람들의 정거장”이라며 “건강은 기본이고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니 멀리 사는 자식보다 더 의지가 된다”고 웃음 지었다.

복지당국의 고독사 관리망 곳곳에 빈틈이 보이는 요즘, 이웃공동체를 복원해 1인가구 고립을 막으려는 시도가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초어르신행복e음센터의 ‘친구모임방’ 사업이 대표적 모범 사례다. 이 사업은 홀로 사는 노인의 집을 사랑방으로 재탄생시킨다. 모임장이 주 1회 이상 자신의 집에 노인 회원들을 초대하고, 이들은 송편 빚기, 노래자랑 등 원하는 활동을 직접 짜고 실행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지자체는 모임방의 수도세, 전기세 등 공과금을 지원한다. 노인들이 관리 대상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주체가 되는 셈이다.

복지관보다 더 촘촘한 안전망은 '친구'

2015년 독거노인 5명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6년 만에 180명이 참여하는 40개 모임으로 거듭났다. 사업을 고안한 하백선 센터장은 “규모가 큰 복지관은 인원이 많아 일일이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서로의 마음까지 잘 알 수 있는 규모의 모임이라야 어르신들이 심리적 안정도 얻고 복지관에서 챙기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임방에서 만나 친구가 된 이들은 서로의 위험 신호도 감지해낸다. 3개월 전 모임방 회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천유진(70)씨는 그의 부고를 모임방과 사회복지사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천씨는 “요즘 너무 수척해 보여 병원을 가보시라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가끔 술 드시고 ‘심심해 전화했다’ 하면 ‘주무시고 내일 봐요’라고 답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서로를 지켜주는 지역사회… '고독사 제로' 효과 톡톡

친구모임방 사업은 '고독사 제로' 등 가시적 성과도 내고 있다. 서초구에 따르면 2019~2021년 서초구에선 고독사(사망 이후 72시간 이상 지나 발견)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기간 서울에선 2019년 69건, 2020년 51건, 지난해(1~10월) 67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다른 자치구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로 주목받는 사업이 됐다. 센터는 향후 모임방을 최대 1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 증가 등 고독사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고독사 예방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민간 참여 유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관리망 밖 고독사를 막기 위해선 지역사회 자원의 동원이 필수”라며 “슈퍼주인, 반찬가게 등 일상에서 위기 신호를 감지하면 곧바로 사회적 도움이 전해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지킴이가 돼야 고독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최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