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싸우면서 닮는다?... '녹취록 폭로전' 대처도 판박이

입력
2022.01.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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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이슈 서로 띄우며 실점 만회 계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녹취록 폭로 전쟁'의 판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음 파일을,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욕설이 담긴 녹음 파일을 '네거티브 공세'에 동원하며 연일 드잡이 중이다.

미워하며 닮는다더니, 두 후보의 대처 방식은 데칼코마니 같다. "나의 실점은 상대의 실점으로 덮는다. 상대의 실점이 더 커 보이게 만들기만 하면 내가 이긴다."

①후보는 사과, 당은 고발 '투트랙 전략'

'굿바이, 이재명'의 저자 장영하 변호사는 18일 이 후보의 욕설 파일을 새로 공개했다. 이 후보는 연이틀 사과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부족했고, 욕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했다. "(욕설 상대인) 그분(형님)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도 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장 변호사를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장 변호사가 배포한 자료를 언론이 편집해 공개해도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으름장도 놨다. 욕설 파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민주당의 투트랙 대응은 국민의힘과 판박이다. 윤 후보는 MBC가 김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을 보도한 직후인 17일 "사적 대화 내용이 방송으로 공개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것도 있었다"면서도 "많은 분들한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법적 대응은 국민의힘이 맡았다. 녹음파일을 제공한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와 이를 보도한 MBC를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고, 통화 내용을 조작한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누리꾼도 고발했다.


②상대 실점 부각 위해 '네거티브 공세'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상대 대선후보를 정조준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19일 광주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건희씨가 윤 후보의 행동과 선거 캠프를 장악한 게 (녹음 파일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며 "야당 인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씨가) 제2의 이멜다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멜다는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배우자로,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다.

국민의힘도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9일 "이 후보 욕설 파일을 들어보면, 이 후보가 형님과 통화할 땐 유동규의 대학 전공을 꿰고 있었다. 대장동 국정감사 당시 유동규를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냐"며 이 후보의 도덕성을 때렸다.


③'미투 폄훼' 논란은 여야 모두 거리두기

곤란한 의혹엔 침묵하는 점도 닮았다. 김건희씨가 녹취록에서 강간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옹호한 것이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빗발치지만,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거리두기 중이다.

윤 후보는 19일 '김씨의 미투 관련 발언에 사과를 안 하는 건 미투에 부정적인 2030세대 남성 표심 때문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송구하고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이미 (MBC 방송 당시) 서면으로 말했다. 지금도 저나 제 아내나 같은 생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김씨 발언으로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적인 불편을 초래한 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미투 폄하 논란에 대해선 집요하게 공격하지 않는다. 송영길 대표는 19일 '김씨의 녹음 파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투 문제뿐만 아니라 김씨가 도사들과 대화를 한다든지, 캠프를 장악하는 모습"이라며 짧은 언급만 했다. 안 전 지사가 민주당 소속이었던 만큼, 해당 이슈를 키우는 게 민주당에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