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9명은 문재인 정부 5년 차인 지난해에도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세대, 남녀, 지역 갈등은 전년보다 더욱 심각해졌다고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념, 경제적 격차에 주로 국한됐던 갈등 지형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인데, 대선을 앞두고 집단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올해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은 갈등 해소를 위해 '사회적 합의 기구'를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런 공론화 기구를 통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갈등 현안으로는 집값 안정, 방역 대책, 정치제도 개선이 우선적으로 꼽혔다.
한국리서치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20일 발표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88.7%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률은 1.4%에 불과했다. 부문별로는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83.2%), '못사는 사람과 잘사는 사람'(78.5%), '경영자와 노동자'(77.1%) 순으로 갈등이 심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세대, 지역, 젠더 부문은 갈등 심화가 두드러졌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갈등'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응답은 64.0%로 전년(60.8%) 대비 3.2%포인트 상승했다. '수도권과 지방 갈등'은 62.9%, '남자와 여자 갈등'은 51.7%가 심각하다고 답해 직전 조사 대비 각각 5.5%포인트와 5.8%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남녀 갈등은 2018년 49.5%로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45.0%, 2020년 45.9%로 큰 변동이 없다가 지난해 51.7%로 반등해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 1년 사이 상승폭도 모든 집단 갈등 가운데 가장 크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인상, 성범죄 처벌 강화 등 젠더 이슈가 전면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 갈등의 핵심 요소로 인식된 것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정부 5년 차에 '갈등이 늘었다'는 응답자는 58.8%였다. '갈등이 줄었다'는 응답률(8.1%)의 7배 이상으로, 현 정부의 사회 통합 내지 갈등 관리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정부가 집단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5.7%가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답해 '노력하고 있다'(44.3%)는 응답자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현 정부의 갈등 관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출범 첫해인 2017년 26.5%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올라 이번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갈등 해소를 위해 차기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 및 숙의 기구를 신설하자는 의견에 응답자의 73.0%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 없다'는 응답률(26.4%)의 3배에 가깝다. 조사를 총괄한 이강원 한국갈등해소센터 소장은 "국민들이 우리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숙의와 참여 등 공론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갈수록 다양화·첨예화하는 사회 갈등 영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차기 정부가 공론화 기구를 법제화해 정교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공론장에서 풀어야 할 갈등 현안으로는 부동산 정책이 첫손에 꼽혔다. '차기 정부가 사회적 대화 및 공론화 방식을 활용해 우선 해결이 필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39%)가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 수단'을 꼽은 것이다. 두 번째로 응답률이 높은 사안은 '지속적이고 실효성 있는 코로나19 방역대책 공론화'(19%)였다.
이어 '국회의원 선거제 개편 등 정치제도 개선'(14.9%),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 관련 대책'(6.2%), '기후 위기에 대응할 에너지 정책 수단'(6.2%)이 상대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았다. 그 뒤를 이어 '동성애·여성혐오 등 특정계층 차별 및 혐오 관련 대책'(4.1%), '남북관계 개선 등 통일 분야 정책수단'(4.0%), '대입제도·대학구조 조정 등 교육 관련 이슈'(3.1%) 등이 공론화가 필요한 갈등 사안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