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인 'CES 2022' 행사장에선 일본 소니의 전기차 콘셉트카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일본 내 간판 가전업체인 소니의 '깜짝 외도'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애플이 뛰어든 전기차 시장 경쟁에 소니의 참전이 확인된 셈이다. 이를 계기로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국내 전자업계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LG전자로 옮겨졌다. 하지만 양사는 모두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 친환경 흐름을 타고 자동차업계의 대세로 자리한 전기차가 사실상 이동성 갖춘 전자기기로 재탄생하면서 형성된 기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전기차 진출 가능성에 시선이 쏠린 이유는 양사 모두 각종 자동차 부품(전장)과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양사는 완성차 업체에 적지 않은 전장을 공급하고 있다. 주요 전기차 부품을 직접 생산 중인 양사가 조립만 하면 완성차를 만들 수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7년 9조 원을 주고 미국의 오디오 전장 업체인 하만을 인수한 이후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미 차량용 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차량용반도체(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전기차 배터리(삼성SDI), 자동차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및 카메라 모듈(삼성전기) 등에서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 중이다. LG전자도 파워트레인(LG마그나), 전장(ZKW),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카메라(LG이노텍)가 포진해 있다. 양사에선 모두 애플이나 소니와는 다른 구조로 전기차에 필요한 주요 전장들을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애플의 경우엔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서비스 기반 생태계 및 소프트웨어 경쟁력으로 전기차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소니는 카메라 기술을 바탕으로 전기차에 필요한 각종 이미지 센서에서 강점을 가진다.
삼성전자나 LG전자 입장에선 자사 부품을 직접 조립해 완성차를 만드는 것보단 지금처럼 벤츠와 BMW, 아우디, 폭스바겐, GM, 테슬라 등 다수의 완성차 업체에 안정적으로 부품 납품에만 집중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오히려 완성차 시장에 진출할 경우, 기존 거래 관계에 악영향만 가져올 수 있어서다.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 기자간담회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이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안 하느냐'란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삼성은 완성차 진출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처지를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 분야에선 퀄컴과 경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애플과 퀄컴의 위탁 생산 물량 수주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반면 파운드리에만 집중하는 TSMC의 경우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을 내걸고 애플, 퀄컴의 물량을 손쉽게 확보하고 있다. 애플이나 퀄컴이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겼다가 자사의 기술 노하우를 뺏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만큼, 삼성전자보단 TSMC를 선호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사업부 분사에 나설 것이란 소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배경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 LG의 경우 치열한 완성차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보단 다수의 업체에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택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