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꿈꿨던 가치 잇겠다" 배은심 여사 빈소 이틀째 조문 행렬

입력
2022.01.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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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이한열 열사와 하늘서 해후하길"
윤석열 이낙연 김동연 등 정치인도 방문
영화 '1987' 장준환 감독도 빈소 찾아 추모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내 고(故) 이한열 열사 묘지. 문모(54)씨가 바지 호주머니를 뒤지며 뭔가를 애타게 찾았다. 향로에 꽂은 향을 사를 라이터를 구하지 못한 문씨는 잔에 소주를 따라 영전에 올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일용직 노동자로 소개한 문씨는 "어제 배은심 여사 별세 소식을 접하고 이한열 열사를 먼저 찾아뵙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고인들이 키워왔던 민주화 가치가 이젠 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9일 별세한 배 여사의 빈소에는 이틀째 사회 각계각층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이한열 열사 묘소에도 "모자(母子)가 하늘나라에서 해후하길 바란다"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단순히 상주(喪主)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고인들이 꿈꿔왔던 가치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한열 열사 모교인 광주 진흥고 2학년 A군이 이날 오전 담임 교사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선발한 이한열 장학생인 A군은 유가족들에게 "이한열 열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대학생으로 성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주교도 조문을 마친 뒤 "우리 조국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목숨을 바쳐주신 애국지사와 민주열사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그들이 이루지 못한 나머지를 남아 있는 이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했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도 "배 여사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모든 분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던 분"이라며 "남은 사람들이 어머님이 못다 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오후 5시 20분쯤 빈소를 찾았다. 대학생 단체 회원들이 윤 후보의 과거 전두환씨 비호 발언을 지적하며 조문을 반대하기도 했다. 앞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무거운 표정으로 조문을 마친 후 취재진에게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은 우리가 정당하게 평가하고 보상해야 마땅하다"며 "그에 합당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배 여사가 생전 염원했던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도 "민주화를 이루는 데 헌신했던 많은 민주 열사들, 또 동지들의 예우를 위해서 민주유공자법이 국회에서 제정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며 "위원회 안으로 잘 만들어서 제정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 설훈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의원 73명은 지난해 3월 26일 민주화 유공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교육·취업·의료·대출 지원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가 특혜 논란이 일자 닷새 만에 철회했다. 야권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대신해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권은희 원내대표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도 조문했다.

일반 시민들의 조문도 계속됐다. 이날 점심 무렵 빈소를 찾은 최영민(68)씨는 "고인이 지켜온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데 노력하겠다"며 "배 여사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도 홀로 빈소를 찾아 추모의 뜻을 밝히며 민주·노동 투쟁 현장에서 함께 싸운 고인과의 추억을 회고했다.

영화 '1987'로 인연을 맺은 장준환 감독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장 감독은 "30여 년을 치열하게 투사로 살아오신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서 아드님과 만났을 것"이라며 "편안하게 쉬면서 많은 이야기 나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 여사의 장례식은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은 11일 오전 9시 발인을 마치면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노제를 진행한 뒤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안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