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곳 없는데 꽃값은 금값"… 화훼업계 '졸업식 대목' 울상

입력
2022.01.05 04:30
코로나 재유행에 졸업식 속속 비대면 전환
꽃값은 국내외 공급 부족에 2배 이상 급등
온라인 및 비누꽃 판매 등 자구책도 한계
화훼업계 "정부가 생존책 마련해줘야"

"꽃장사 30년째인데 올해가 최악입니다. 명색이 졸업식인데 3시간 동안 하나도 못 팔았어요."

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강남구 대곡초 정문 앞에서 졸업 축하용 꽃다발을 파는 진모(65)씨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하객들은 꽃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장미 한 다발에 3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2~3배쯤 비싼 탓이다. 학부모 강규진(45)씨는 "어떤 집은 4만5,000원이나 주고 꽃다발을 샀다더라"며 "아이와 가족에게 한 번밖에 없는 추억이라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진씨가 준비해온 생화 꽃다발은 예년보다 훨씬 적은 9개였지만, 이마저도 다 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진씨는 "오늘 가져온 것도 어제 팔지 못해 남은 것"이라며 "1, 2월 장사로 1년을 먹고사는데 예전 같지가 않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수입 급감에 외국인 인력 감소... 꽃 가격 급등

꽃장사 대목이라는 졸업식 시즌이 찾아왔지만 화훼업계의 침울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꽃시장을 위축시켰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면서 졸업식이 대거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한 데다가 꽃 가격도 공급 부족으로 급등한 탓이다.

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유통정보통계에 따르면 현재 장미의 평균 단가는 1만6,766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8,965원에 비해 2배가량 올랐다. 강남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한 단에 2만 원하던 리시안을 오늘 3만5,000원에 들여왔다"며 "원가가 오르면서 꽃을 사는 손님도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꽃값 급등의 주요인 역시 코로나19 확산이다. 교역 위축으로 해외 꽃 수입이 줄어든 데다 국내 화훼농가 역시 외국인 노동자 감소로 생산이 줄어든 탓이다. 신규천 농협경제지주 계장은 "지난해 화훼농가 중 20%가량이 다른 작목으로 전환했다"며 "가장 수요가 많은 장미는 남미 수입 의존도가 컸는데, 오미크론 확산으로 검역이 강화돼 추가적으로 들여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졸업식 축소에 연말연시 행사 취소… "팔 곳이 없어요"

지난해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망쳤던 졸업식 대목은 올해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서초구 양재꽃시장 홈페이지 게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에서 대면 졸업식을 진행하는 초중고교는 703곳으로, 2020년(762곳)에 비해 60곳 가까이 줄었다. 비대면 졸업식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여기에 연말연시 진행되던 각종 행사도 코로나 재확산에 줄지어 취소되면서 화훼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양재꽃시장에서 35년째 꽃집을 운영 중인 김모(57)씨는 "졸업식 매출은 코로나 확산 이후 70~80% 줄었다"며 "예년이라면 하루 최대 300만 원어치도 파는 때이지만 오늘 온 손님은 2명뿐"이라고 말했다. 동료 상인 오모(50)씨 역시 "위드 코로나가 진행되면서 (수요가) 풀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되면서 행사가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꽃가게들은 온라인 판로 개척, 비누꽃 판매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온라인 판매의 경우 유명 배달플랫폼 등이 꽃장사에 뛰어들어 소비자에게 싼값에 공급하는 통에 영세 소매상은 경쟁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꽃집 주인 최모(60)씨는 "생화가 안 팔려서 조화나 비누꽃 판매에 나섰지만 사진을 찍을 때 예쁘지 않고 수요도 적어 도중에 중단했다"며 "꽃도 직접 사기보단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추세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훼농가도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화훼농판장 경매수수료를 한시 인하하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소규모 농가에 영농바우처 100만 원을 지급했지만, 업계 생존을 위해선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장희 한국절화협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경매수수료 재인하 등을 통해 농가들이 출하량을 늘리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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