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억·인지·보행 장애 생기면… 치매 아닌 수두증일 수도

입력
2022.01.0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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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서 듣는다] 박영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나이가 들면 뇌는 다양한 원인으로 기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인지 기능이 떨어져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이나 걷기 힘들어지는 파킨슨병 등이 발생한다. 이런 퇴행성 질환은 약물로 증상을 줄일 수 있지만 근본 치료는 어렵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처럼 인지ㆍ보행 기능이 떨어지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뇌 질환이 있다. 바로 ‘정상압 수두증(正常壓 水頭症ㆍnormal pressure hydrocephalus)’이다.

정상압 수두증은 머리 안에 들어 있는 뇌척수액(cerebrospinal fluid)이 필요 이상 많아져 뇌를 눌러 뇌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어서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인지장애 치료 전문가’인 박영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정상압 수두증은 과다해진 뇌척수액을 제거해주는 수술이나 정기적으로 뇌척수액을 배출하면 근본적 치료가 가능하다”며 “질환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치료 효과가 떨어지므로 인지ㆍ보행ㆍ배뇨장애가 있다면 곧바로 병원에서 검진하기를 권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정상압 수두증의 경우 수술로 증상이 호전되며 완치 가능한 질환이고 고령 환자도 수술을 많이 시행하고 성공률도 높다”고 덧붙였다.

-정상압 수두증이란.

“우리 뇌는 두개골 안에서 뇌척수액(뇌 거미막 밑 공간과 뇌실, 척추의 중심관을 채우고 있는 액체)에 둘러싸여 떠 있는 것과 같은 상태로 있다. 두개골이 뇌를 누르거나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은 뇌를 둘러싼 뇌척수액이 완충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뇌척수액은 뇌실(腦室ㆍcerebral ventricle)에 존재하는 맥락총(脈絡叢·choroid plexus)이라는 부분에서 생성돼 뇌 주변을 순환한 뒤 거미막 융모에서 흡수된다. 뇌척수액이 많이 생성되거나 잘 흡수되지 않으면 뇌실 내 적정량(120~150mL)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쌓인다.

그러면 뇌척수액이 주변 뇌 조직을 압박해 보행ㆍ인지ㆍ배뇨장애를 유발한다. 이를 ‘정상압 수두증’이라고 한다. 이때 허리에서 뇌척수액 압력을 측정하면 압력이 정상 범위에 있기에 ‘정상압’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정상압 수두증은 일반에게 생소하지만 70세 이상 고령층에선 100명 중 2명에게서 나타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어떠한가.

“우선 걸음걸이 속도가 느려지고 보폭이 좁아져 종종 걸음을 걸으며, 걸음이 불안정해져 쉽게 넘어지는 보행장애가 있다. 인지장애는 판단력ㆍ실행력 등 뇌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흔하다. 집중력이나 기억 저하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배뇨장애의 경우 소변이 자주 마렵고 갑자기 요의(尿意)를 느꼈을 때 참기 힘들어 요실금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노년기의 척추ㆍ관절 질환이나 전립선비대증 등 비뇨기계 질환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진단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어떻게 진단ㆍ치료하나.

“뇌를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검사했을 때 뇌실이나 뇌고랑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면 정상압 수두증일 가능성이 있다. 이후 요추에서 뇌척수액 배액술을 통해 뇌척수액을 30~50mL 빼냈을 때 증상이 개선되면 정상압 수두증으로 진단한다.

정상압 수두증은 뇌 속에 과다 축적된 뇌척수액을 밖으로 배출하면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치료법으로는 뇌척수액을 머리 밖으로 배출하는 우회로를 거의 영구적으로 삽입하는 ‘션트(shunt) 수술’이 있다. 우리 뇌의 뇌실이나 척수강 안에 가느다란 관을 삽입한 뒤 이 관을 복강으로 연결해 과도한 뇌척수액이 복강으로 배출되도록 한다. 관에 압력 조정이 가능한 밸브가 연결돼 있어 의료진이 뇌척수액 배출량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션트 수술을 받을 수 없거나, 뇌척수액 배액술(排液術) 효과가 수개월 이상 길게 지속된다면 뇌척수액을 정기적으로 배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치매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노년기에 인지ㆍ보행장애가 나타나면 치료가 어려울 것으로 여겨 병원을 찾지 않거나 늦게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는 정확한 검사를 하지 않고 뇌영양제만 복용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정상압 수두증은 근본적 치료가 가능한 데다 초기에 치료해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는 뇌척수액 배액술을 시행해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없기에 인지ㆍ보행ㆍ배뇨장애가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고, 정상압 수두증이라면 빨리 치료하기를 권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