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는 섬, 150년 동백숲도 스러지려나

입력
2021.12.29 04:30
20면
<138> 신공항 예정지 부산 가덕도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는 올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섬이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신공항 예정지로 거론되며 여론의 중심에 선 곳이다. 2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하고, 9월에는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이 의결돼 15년간의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부산시에서 내놓은 계획안을 보면 섬 남쪽에 활주로를 건설하고, 나머지 지역에는 배후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2024년부터 공사가 시작되면 어떤 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일부는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가덕도의 제 모습을 볼 날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바람 타는 섬, 그 아픔의 흔적들

부산과 거제를 연결하는 거가대로 천성IC에서 빠져나와 섬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언덕 하나를 넘으면 대항전망대다. 바다를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비행기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때 여야 정치인들이 단골로 방문한 장소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 너머로 거가대교와 거제도가 아른거리고, 수직 절벽 아래에는 아담한 대항 포구가 내려다보인다.

특히 해 질 녘이 아름다운 듯 ‘대항전망대에서 바라본 낙조’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비너스는 하루의 마감을 서러워하며 울었네 / 얼마나 비통한지 피멍이 피멍이 들었구나’라며 가덕도의 서러운 노을 풍경을 노래하던 시는 대뜸 ‘장밋빛 미래는 우리 가슴속에 붉게 타오르고’라며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기대로 마무리된다. 반면 비행기 조형물에는 ‘탄소 중립 이행하라, 가덕도 살리자’라는 붉은 글귀가 덧칠돼 있다. 신공항 건설은 기정 사실이 됐지만, 찬반으로 갈렸던 마음속 응어리는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전망대에서 내려가 회전로터리에서 왼쪽으로 돌면 새바지 포구, 오른쪽은 대항 포구다. 새바지는 동풍, 즉 샛바람을 고스란히 받는 곳이라는 의미다. 가덕도는 오랜 옛날부터 일본과 마주하는 한반도 남단의 최전선이었다. 바닷바람 거센 곳이 새바지만이 아니듯, 섬 곳곳에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꾼들이 한가로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새바지 방파제 옆에는 일본군 특공정 동굴이 있다. 태평양전쟁 끝 무렵인 1944년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구축한 동굴 기지다. 일제의 자살 특공정 부대가 배치됐던 제주 성산일출봉과 수월봉 등지의 동굴과 유사하지만, 이곳에는 실전 배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전쟁이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새바지 해안 동굴은 현재 낙석 위험이 있어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대항 포구 옆 바닷가 절벽에도 여러 개의 인공 동굴이 있다. 역시 태평양전쟁 말기 진해만으로 진입하는 연합군 함선을 타격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대항은 으레 ‘큰 항구’겠거니 여기지만, 실제는 ‘커다란 목(대항·大吭)’이라는 뜻이다. 안으로 둥그렇게 파인 만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물목으로, 외부에서 쉽게 파악하기 힘든 지형이다.

현재 포구 끝에서 동굴 입구까지 수상 산책로가 연결돼 있고, 4개 동굴을 정비해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굴을 파던 흔적이며, 결사 항전에 내몰린 어린 병사들의 심정을 추측할 수 있는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입구가 다른 3개 동굴은 안에서 서로 연결돼 있다. 통로를 따라 설치한 은은한 조명이 전쟁의 비극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가덕도 남단 끝 마을 외항포는 을사늑약(1905년) 전부터 일제에 점령당해 섬의 아픔이 집약된 곳이다. 대항 포구와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이다. 안쪽으로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선 너머로 거제도 끝머리가 낮게 보이고, 해안에서 산비탈까지 고마고만한 집과 밭이 이어진다. 숨겨 놓은 듯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 뒤쪽에 1904년 일본군이 건설한 포대진지가 남아 있다. 두꺼운 콘크리트를 씌운 반 원통형 막사와 무기고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고, 무기고 사이에는 360도 회전하며 발사할 수 있도록 포를 설치했던 흔적이 선명하다. 이곳 포진지 덕분에 일본군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물리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외양포의 수난이 일본에는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됐으니 우리로서는 그만큼 뼈아픈 유물이다.

막사 지붕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옆으로 뿌리를 뻗는 대나무의 특성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군사시설을 숨기기 위한 장치다. 내부에는 현재 가덕도의 아픈 역사를 영상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포대진지가 들어서면서 외양포는 마을 전체가 일본군 요새로 변했다. “1904년 8월 3일 마쓰이라는 일본군 공병 소좌가 부하들을 이끌고 들어와 조선 정부의 허락을 얻었노라며 마을에 살고 있던 양천 허씨 64가구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군인들이 총칼을 차고 들어와 떠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니겠습니까.” 김상호 부산 강서문화원 해설사의 설명이다. 이후 마을에는 일본군 사령관실, 헌병관실, 군인 숙소 등이 들어섰다. 당시에 건설한 우물이 8개였던 점을 감안하면 800~1,000여 명의 군인이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33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의 집들은 외관이 좀 바뀌었을 뿐 당시 모습 그대로다. 광복 후 마을의 땅과 집은 모두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다. 최소한의 생활 여건을 보장하기 위한 개축만 허가될 뿐 증축은 금지하고 있다. "얼핏 새집처럼 보이지만 내부 서까래와 기둥은 117년 전 그대로죠.”

1945년 광복 직후,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외양포에는 인근 대항 마을과 바다 건너 진해에서 온 사람, 피란민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숙소를 배정받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포대 진지의 엄폐 막사에 거주하기도 했다. 막사 내부에 당시에 놓은 구들장이 남아 있다.



강서구에서 발행한 가덕도 소개 책자에는 관광객이 가기 힘든 명소가 2곳 있다. 외양포가 끝 마을이지만 도로는 남쪽 산기슭으로 이어진다. 가덕도 등대로 가는 길이다. 1909년 불을 밝힌 이 등대는 2002년 새 등대를 세우기 전까지 100년 가까이 거제 해역과 진해만을 오가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군사보호구역 안에 있어서 4일 전에 출입 허가를 받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또 하나 숨겨진 명소는 국내 최대 동백 군락지다. 외양포 마을 뒤 섬의 남동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24만㎡ 면적에 150여 년 수령의 동백 수만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데, 특히 동백 터널과 바다의 조화가 일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탐방로도 없을뿐더러, 이곳 역시 군사보호구역 안에 있어서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계획대로라면 대항과 외양포, 새바지는 모두 활주로 건설로 사라지게 된다. 동백 군락도 보존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일제의 생채기가 지워지는 건 아깝지 않지만, 긴 세월 성장해 온 동백숲이 빛을 볼 기회도 없이 사라진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벽화 골목 지나면 뜻밖의 일출 명소

가덕도에 일제강점기 유물만 있는 건 아니다. 가덕도 해역은 부산과 진해로 들어오는 바닷길의 요충지로 왜구의 침입이 빈번한 길목이었다. 대항에서 가까운 천성마을에 천성진성 터가 남아 있다. 삼포왜란(1510년 부산포, 진해 제포, 울산 염포에서 발생한 왜인들의 폭동 사건) 이후 논의가 시작돼, 1544년에 왜구의 출몰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방어시설이다.

3m 높이의 석성이 900m가량 둘러진 성곽과 성터는 농지로 이용되다 현재 복원 중에 있다. 일제 잔재만 도드라져 보이는 가덕도의 잊힌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공항이 들어서면 오히려 돋보일 유적이다.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인 성북동 한가운데에는 가덕진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천성진성이 섬의 서쪽 바다를 지키는 곳이었다면 가덕진성은 동쪽 바다를 방어하는 진지였다. 바로 앞에 눌차도가 가로막고 있고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오는 천혜의 요새다. 그러나 성터에는 현재 초·중·고등학교가 들어서서 옛 모습으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덕문중학교 축대에서 일부 원형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가덕진성이 위치한 성북동에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건너에 눌차도가 있다. 가덕도와는 2개의 제방으로 연결된 섬이다. 동북쪽 정거마을은 담장 벽화가 그려진 아늑한 어촌이다. 약 300m 좁은 골목을 따라 마을의 특색을 살린 그림이 소담스럽게 그려져 있다.




골목을 벗어나면 길이 끝나고 갑자기 탁 트인 바다가 등장한다. 건너편에 낙동강에서 쓸려온 모래로 형성된 진우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부산 강서구 시가지가 아른거린다. 오른편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좁은 골목을 끝에서 만나는 풍경이라 더욱 극적이다.

정거마을은 인근 지역 어선들이 큰 바다로 나가기 전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닻을 내려놓고 잠시 머물러가는 곳이다. 갯바위에 매어 놓은 작은 어선이 소박하고 호젓한 갯마을 감성을 자극한다.

부산=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