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공수처

입력
2021.12.2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1년 만에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검찰권을 견제할 수사기관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검찰 비리 수사의 성과는 전무하다. 이규원 검사의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 사건은 수사를 마무리하고도 기소 판단을 미룬 채 검찰에 재이첩했다. 1년 동안 ‘기소 0건’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둔 반면, 이성윤 황제조사와 위법한 압수수색에 이어 최근에는 언론사찰 논란에 휘말리면서 존립 기반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 최근 언론사찰 논란에 대해 공수처는 여전히 억울한 모양이다.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해 유감 입장을 표시하면서도 “모든 수사 활동은 법령과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해 적법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통신자료 조회는 법원 허가로 통화 내용까지 들여다보는 통화사실 확인과는 성격이 달라 실제 사찰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취재진 가족의 통신자료까지 확인하는 저인망식 수사는 수사권 오·남용의 소지가 없지 않다. 검찰 수사관행을 답습하는 행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더욱 답답한 형국이다. 검찰 조직에서 작성한 고발장이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된 정황과 증거가 모두 드러났는데도 수사는 넉 달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한동훈 검사를 공수처장으로 모셨으면…” 하고 비꼬았을까. 작성자나 전달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이상 흐지부지 마무리될 공산이 커 보인다. 공수처 주변에서 이규원 검사 사건처럼 검찰로 이첩하자는 주장까지 거론되는 모양인데, 지금까지 수사 결과로 공수처의 능력을 평가받는 게 책임지는 자세에 가깝다.

□ 김진욱 공수처장은 취임사에서 “국민ㆍ인권 친화적인 수사로 공수처가 헌정질서에 단단히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출범 첫해 성적으로는 당장 존폐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당장 공수처가 폐지되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위기는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수사 능력을 제고하고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절실하다.


김정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