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연을 하고 몸살이 났어요. 배우로 무대에 설 때는 그런 적이 없었죠. 마음속으로 배우 9명과 함께 연기하고 동시에 각 스태프들의 역할까지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달 10일 막을 올린 뮤지컬 '더데빌'의 연출을 맡은 송용진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기할 때보다 더 성실하게 준비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초연 당시부터 존 파우스트 역할을 세 시즌 연달아 연기할 때는 존의 관점에서 작품을 봤다면 이번엔 달랐다. 그는 "모든 캐릭터를 내 것으로 만들며 인물 간의 관계도 하나하나 맞춰 나가다 보니 숲을 보게 됐고 작품도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 출신 연출의 캐릭터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피는 디렉팅은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물론 덕분에 후배 배우들은 고강도 연습을 감당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더데빌'은 인간의 욕망, 선과 악을 그려낸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지나 연출이 처음 무대에 올린 후 중국과 일본에도 수출했다. 국내에서는 이번 공연이 네 번째 시즌이다.
무대 밑으로 내려온 계기는 무엇일까. 송용진은 '더데빌'이라서 연출을 결심했다고 단언했다. "2011년 미국 뉴욕의 한 소극장에서 기존 텍스트 중심의 극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감동적이어서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뛰어다닐 정도였죠. 한국에도 이런 극이 있을까 했는데, 3년 뒤에 '더데빌'을 만났어요."
그는 '더데빌'이 "소설이 아닌 시와 같은 작품"이고 표현했다. 텍스트 기반 서사가 아니라 거대한 음악과 시각적 이미지 등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의미다. 연출로서 이런 부분을 살리려고 조명부터 소품, 음향까지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챙겼다. 세심한 조명 연출로 배우의 얼굴을 또렷하게 보이게 만들어 관객에게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고자 했고, 스탠드 마이크나 가면 등 상징적 의미를 담은 소품도 적극 활용했다.
어느덧 23년 차가 된 송용진은 공연계 선배로서의 책임감도 느낀다. 바쁜 와중에도 한국 뮤지컬협회 배우분과위원(이사)으로도 활동하는 이유다. 이번 감염병 사태 속에 공연 중단으로 생계가 막막했던 앙상블 배우 등의 어려움을 전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는 "분과장인 정영주 배우 등과 함께 배우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독립 조직도 추진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지금 예술인들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현장에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으론 어려운 시기 속에 공연이 관객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어느 때보다 크다. 그는 "이번 '더데빌' 공연에서는 특히 '더 송 오브 송즈(The song of songs)'가 관객에게 위로를 주길 바라며 배우들과 함께 연습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여주인공 그레첸과 선(善)을 상징하는 빛의 상징 'X-White(엑스화이트)'가 노래한 따뜻한 선율의 곡이다.
내년에도 그는 무대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활동할 계획이다. 당장 1월에 열리는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연출도 맡았다. 그는 "배우와 스태프, 팬분들도 모두 가고 싶어 하는 축제 같은 행사가 되길 바라며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기에 대한 열망도 여전하다. 올해 '마마 돈 크라이' '검은 사제들' 등으로 무대에 꾸준히 오른 그는 "내년에는 영화로도 인사드리고 싶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뮤지컬 '더데빌'은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내년 2월 27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