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다수의 언론인과 정치권 인사, 일반인을 상대로 한 '통신 사찰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고위공직자가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정 기자를 상대로는 영장까지 받아 통화 상대방의 이력을 살펴본 일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공수처를 항의 방문해, 사찰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를 달구고 있는 통신자료 조회가 어떤 개념이고,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본보가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논란이 되는 '통신자료'라는 게 무엇인가.
"통신자료란 이동통신 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이 담긴 개인정보다. 전기통신사업법(83조)에 따르면 공수처를 포함한 수사기관은 통신자료 제공 요청 사유 등을 담은 서면을 이동통신사에 보내 통신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법원 영장이 필요 없기 때문에 입법과 사법적 통제는 없다."
-'통신사실확인자료'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검찰과 경찰, 공수처 등 수사기관은 피의자나 참고인을 본격 수사하기에 앞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확보하곤 한다. 통화 상대방의 전화번호와 통화 일시, 착발신 시각 등이 담긴 통화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통신자료와 달리 좀 더 민감한 사적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근거 법령도 통신비밀보호법(13조)으로 차이가 있다."
-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이 왜 논란이 되고 있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와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기자 등의 개인 정보를 무더기로 확보한 게 불씨가 됐다. 주요 매체 가운데 현재까지 '조회를 당했다'고 밝힌 기자들만 13개 언론사에서 60~70명에 달한다.
본지도 예외가 아니다. 법조 분야 취재기자 5명의 통신자료가 지난 8월과 10월 공수처에 제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에는 공수처 수사 대상과 직접 연락한 적이 없는 팀장급 기자와 법원 출입 기자 2명도 포함됐다.
이성윤 고검장의 '황제 조사' 관련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도한 TV조선의 경우엔 가족들까지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치인과 시민단체 인사들까지 조회 대상에 포함돼 있어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통신자료 수집은 검찰이나 경찰도 하고 있지 않나
"맞다. 법에 규정돼 있는 만큼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통신자료 수집을 하고 있다. 과거에도 논란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7년 10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선 기간에 제 처에 대한 통신조회가 8차례 있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4차례나 통신조회를 했다”며 무분별한 통신조회를 문제 삼았다. 이 중에는 서울중앙지검의 통신조회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공수처 사찰 의혹과 관련해 “명백한 야당 탄압으로 공수처 존폐까지 검토해야 한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다.
잇따른 논란에 개선 요구도 꾸준히 있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 개선을 권고했고, 20대 국회에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통신조회를 사찰이라고 규정할 수 있나.
"법조계에선 통신자료 수집 남발 논란이 제기됐다고 해서, 곧장 특정인을 겨냥한 '사찰'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조회 대상을 미리 알고 불순한 목적에 따라 조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언론인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조회된 경우는 본 적이 없다'는 지적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검찰에선 주로 범행 시기에 집중해 통화 상대방을 찾는 등 가급적 수사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수집에 주력한다고 한다. 공수처가 '기자나 정치인 등과 연락이 잦은 인사가 수사 대상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항변하지만, 크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일각에선 신생 권력기관이 조회 대상을 선별하고 분석하는 데 미숙해, 보이스피싱 수사하듯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받은 듯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신자료 확인 차원을 넘어 기자의 통화내역까지 들여다본 건 문제 아닌가.
"공수처가 TV조선 기자의 가족 통신자료까지 확인한 건 분명 수사권 오남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성윤 황제 조사' 논란 보도와 관련해, 공수처는 수원지검 관계자를 CCTV 위치를 알려준 공무상 비밀누설자로 의심해 내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해도 CCTV 관련 정보가 대법원 판례처럼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공수처가 조직 논리를 우선해 무리하게 통신수사를 벌이다가 언론 자유 위축 논란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사찰 논란을 해소하려면 기자가 어떤 혐의와 관련돼 있었는지 공수처가 직접 설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날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과 면담 자리에서 (통신자료 조회가) 문제가 없다는 점을 뒷받침할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현안 질의 자리가 만들어지면 출석해 답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