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추행 피해 사망' 가해자 징역 9년… '보복협박' 불인정 형량 줄어

입력
2021.12.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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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상해로 극단 선택" 양형기준 최고형
협박죄엔 "구체적 해악 고지에 미치지 않아"
유족 측 "전향적 판결 기대에 못 미쳐 유감"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의 직접 가해자가 1심에서 징역 9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제추행’ 혐의는 예상대로 중형이 선고됐지만, ‘보복협박’ 혐의는 법적 처벌이 불가하다고 법원이 판단해 구형보다 형량이 크게 줄었다. 유족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17일 군인등강제추행치상,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모 중사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장 중사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올 3월 2일 부대원들과 저녁 식사 후 부대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후임 고 이예람 중사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직후 차에서 내린 이 중사를 쫓아가 ‘신고할 테면 해보라’는 취지로 말하거나, 이후 자해를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내 피해자의 입막음을 압박한 혐의도 있다. 이 중사는 피해 사실 신고 후 부대 상관들로부터 회유ㆍ협박 및 면담 강요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 5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하고 증거도 충분한 만큼 강제추행 혐의는 유죄로 봤다. 특히 “장 중사의 추행 행위로 입은 정신적 상해가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주요 원인이 됐다”며 “무거운 죄책감을 고려해 대법원 양형기준상 최대 형량인 징역 9년을 선고했다”고 판시했다.

반면 보복협박 혐의는 무죄 판결했다. 현행법상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공포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장 중사의 행위는 그에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당일 장 중사의 행동을 “구체적 협박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고, 이후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해서도 “자살 암시보다 사과 전달 표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형 선고에도 군검찰 구형량(징역 15년)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지면서 유족은 재판부를 거세게 성토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딸이 생전에 가해자가 죽으면 죄책감을 어떻게 안고 사느냐고 말했다”며 “가해자가 죽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게 협박으로 안 들리느냐”고 항의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한국일보에 “군대라는 특수성 및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지속적 압박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한 전향적 판결을 기대했는데 유감”이라고 말했다. 군 검찰은 판결문 등을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 관련 재판은 여러 건이 진행 중이다. 고인을 회유ㆍ협박한 2차 가해자, 부실한 사건 처리로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장과 법무실 소속 국선변호사 등 13명도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초동수사 책임을 진 공군20비행단 군사경찰과 군검사, 군검찰을 총지휘하는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은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아 형사재판을 피해갔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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