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받지 못할 축의금만 n번째" 비혼은 오늘도 속앓이 중

입력
2021.12.19 12:00
결혼·임신·출산 파티에 축의금까지..."돈 아까워"
4명 중 1명 비혼 꿈꾸지만 사회는 '기혼 중심'
비혼이면 연애 안 해야? 비혼자 향한 오해와 비난
"새로운 삶의 방식,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결혼한다고 파티도 해줬는데 임신하니 태아 성별 깜짝 공개 파티까지 하게 생겼어요. 결혼 안 할 저는 허공에 돈 뿌리는 기분이죠."
비혼 직장인 김모(30)씨


직장인 김은혜(30·가명)씨는 내년 초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을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 모임에 나오는 친구들 중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 김씨뿐. 한 명은 올해 초 결혼했고, 나머지 두 명은 현재 애인과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결혼한 친구가 임신한 지 3개월이 될 때쯤 다른 한 친구가 SNS에 성별 공개 파티가 유행이라며 "우리도 임신한 친구에게 해주자"고 제안했다.

'젠더리빌파티'라고 불리는 성별 공개 파티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유행하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국내에 알려져 임산부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다. ①먼저 산모나 남편이 의사에게 '우리가 볼 수 없도록 쪽지에 태아 성별을 적어달라'고 요청한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의사가 성별을 공개할 수 없지만, 어떤 성별이든 축하한다는 의미로 여는 파티에 의사들은 응해주곤 한다. ②친구나 지인이 쪽지를 받으면 이벤트 업체에 제작을 맡긴다. 여아를 뜻하는 분홍색, 남아를 뜻하는 파란색의 꽃가루가 담긴 풍선 또는 같은 색의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를 준비하는 식이다. 김씨는 "풍선 제작만 6만 원에 장소 대관, 테이블 세팅하는 데 20만~30만 원은 든다"며 "이걸 친구들과 나눠서 부담해야 하니 결혼 안 할 입장에선 허공에 돈 뿌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난 결혼식 안 할 건데 축의금만 줄줄

김씨는 지난해 12월에도 결혼을 앞둔 친구를 위해 결혼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브라이덜 샤워'라 불리는 이 파티는 예비 신부를 위해 친구들이 나서서 준비하는데 파티룸이나 스튜디오 혹은 호텔을 대관해 다같이 옷을 맞춰 입고 사진을 찍는다. 김씨는 당시 스튜디오를 빌리고, 원피스와 파티 음식을 사는 데 20만 원을 썼고, 축의금으로도 10만 원을 냈다. 이미 30만 원이나 지출한 김씨는 거절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친구가 서운해하거나 관계가 틀어질까 말을 못 꺼내고 있다. 김씨는 "결혼, 집들이, 임신, 출산, 돌잡이 등 챙겨야 할 이벤트는 산더미인데 내가 이것까지 챙겨야 하나 싶다"며 "정작 비혼인 나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2년차 직장인 김모(24)씨도 비혼 여성으로서 축의금이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김씨는 "1년 동안 회사 선배나 일로 만난 사람들의 결혼 축의금으로 20만 원을 썼다"며 "사회 생활, 인간관계 유지용으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축의로 나갈 돈이 점점 많아질 텐데 걱정"이라고 답했다. 남성 비혼자인 박모(29)씨는 올해 한 번도 결혼식을 가지 않았다. 박씨는 "최근 대학동기 결혼식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며 "어느 순간부터 어차피 받지도 못할 텐데 돈과 시간을 내가 왜 쏟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아예 안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동기들이 박씨를 향해 "너는 왜 동기 결혼인데 안 가냐"고 물었지만 박씨는 "솔직히 내 결혼식은 없을 거라 생각하니 축의금을 내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4명 중 1명 비혼 계획하지만 회사 복지는 '기혼자 중심'

결혼 여부에 따라 회사 복지도 갈린다. 비영리단체에서 4년째 근무하는 정모(33)씨는 "1인 가구인 나는 한달에 3만 원 정도 되는 가족수당을 받을 수 없고, 5만 원부터 많게는 30만 원까지 되는 혼인 관련 경조사비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결혼해야만 받는 연차 등 회사 복지가 모두 혼인 중심"이라고 했다. 올해 11월에 지방 공기업에 입사한 곽모(26)씨 또한 "사내 복지를 설명 받는데 모두 기혼자 중심이라 놀랐다"고 답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90만 원 상당의 건강검진도 배우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배우자가 있으면 가족수당으로 월 6만 원을 더 받고, 자녀 낳을 때마다 수당이 높아져 4인 가족이면 월 15만 원을 받는다. 곽씨는 "동기 중에 기혼자가 있는데 월급을 포함해 이것저것 받는 금액이 비혼인 나와 다르다 생각하니 기분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비혼을 마음먹은 이들은 계속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16.8%에 불과했다.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34.4%, '하지 말아야 한다'는 4.4%였다.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답한 이는 41.4%로 가장 높았다. 혼인 건수도 2000년엔 33만 2,090건에서 2016년 28만 1,635건으로 줄었고, 2020년엔 21만 3,502건에 그쳤다.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지난해 12월 20~30대 성인 1,185명을 대상으로 '비혼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4.8%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4명 중 1명은 비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뜻이다. (관련 기사:☞미혼남녀 4명 중 1명 "비혼으로 살 것")

이렇듯 결혼할 뜻이 있는 이들도, 혼인 건수 자체도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인식과 제도는 결혼을 당연한 전제로 삼다보니 비혼을 택한 이들이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은 여전히 많다.

15일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코리아의 황지연 매니저가 나와 "(회사가) 결혼할 때 축의금과 유급 휴가를 주는 것처럼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직원들에게 똑같은 혜택을 준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반응이 갈렸다. "비혼 장려하다 저출산으로 나라 망하게 만드냐", "혼자 외롭게 죽는 비혼이 자랑이냐"며 분노하는 댓글이 다수였지만 반대로 "복지정책이 남다르다"며 "부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비혼'이라 해도 이해 못해...친구들마저 "일단 사람 만나봐"

비혼자들은 비혼에 대한 개념이 아직 사회에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고 말했다.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일각에선 아예 연애를 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는 이성을 싫어한다는 의미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정모(33)씨는 결혼을 안하는 전제로 8개월째 지금의 애인을 만나고 있다. 정씨는 "최근 청첩모임에 나갔는데 내가 비혼인 것을 아는 친구들도 넌 (결혼을) 언제쯤 하냐고 묻더라. 비혼이라고 누누이 말해도 '그래, 일단 만나봐~'라고 한다"며 "사람들이 지금 당장 결혼을 원치 않는 것과 내 평생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혼을 향한 비난도 여전하다. 대학생 박모(25)씨는 3년 만에 만난 친할머니와의 식사 자리에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오랜 시간 꾸중을 들어야 했다. 박씨는 "할머니가 깜짝 놀라시며 결혼도 안 한다는 건 불효다, 부모가 사위도 보고 손주도 보는 건 당연한 건데 자식된 도리도 못한다고 역정을 냈다"고 했다. 박씨는 동아리에서도 남자 선배에게 비혼이라 말하니 "혹시 페미냐 남혐하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비혼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생각하더라고요."




함께 살아도 보호자 될 수 없어 난처

결혼하지 않지만 함께 사는 비혼동거인은 일상 속에서 불편을 겪기도 한다. 올해 9월 여성가족부가 비혼 동거를 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3,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혼동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4%가 '민간기관(통신사, 보험회사 등)에서 제공하는 가족 혜택을 사용하지 못한 적이 있다', 60%가 '세제 혜택(소득공제 등)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 50.4%가 '공공기관에서 대리 민원 처리 등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결혼하지 않는 전제로 애인과 살고 있는 박모(30)씨는 "최근 5일 동안 입원했지만 (애인이) 가족돌봄휴가를 쓸 수 없어 하루밖에 못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간 최대 10일을 쉴 수 있는 가족돌봄휴가가 마련됐지만 부모, 배우자 등 법적 가족 관계에만 사용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비혼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비혼에 대한 제도와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혼이나 비혼 동거가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됐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혈연'과 '법률혼' 중심의 개념에 머물러있다"며 "사회적 편견이나 법적 제도적 불이익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정책을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을 안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어서 그걸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며 "다양성을 고려하면서 개방적이고 관용하는 자세로 (비혼의) 문제제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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