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근로자 손 들어준 대법원 “일시적 경영악화 탓 임금 미지급 안 돼”

입력
2021.12.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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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청구 제한' 신의성실 원칙 적용 여부 쟁점
1심 원고 승소... 2심 "재무위기 심화" 원고 패소
대법 "경영 위기 극복 가능하면 임금 지급해야"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노사가 9년간 끌어온 6,300억 원대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원심과 달리 명절 상여금(보너스)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또 '경영난이 일시적이거나 극복할 여지가 있다면 회사가 근로자에 대한 임금 지급 의무를 쉽게 저버려선 안 된다’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다른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여타 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퇴직 무관 지급 명절 상여금, 통상임금에 포함“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 근로자 10명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심리 5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근로자들은 2012년 "정기 상여금 600%, 연말 특별 상여금 100%, 설·추석 명절 상여금 100% 등 총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앞선 3년 치를 소급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은 800% 전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명절 상여금을 뺀 700%만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지급해 온 명절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설과 추석을 기준으로 퇴직 근로자에게는 명절 상여가 한 번도 지급되지 않았다"면서 임금의 고정성이 없다고 본 원심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관행이 그랬어도, 급여 세칙에서는 지급일 이전 퇴직자에게도 상여금을 일할(일별로 쪼개서)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며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정기성(일정 간격으로 계속 지급) △고정성(성과·정상근무 등 조건과 관계없는 지급) △일률성(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근로자에게 모두 지급)을 통상임금의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경영난 극복 가능성 있으면 '신의칙' 적용 안 돼

재판부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근로자의 임금 청구를 쉽사리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앞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수당 지급 의무의 '예외 조건'으로 신의칙을 제시했는데, 이번에 보다 엄격하고 구체적인 신의칙 적용 기준을 밝힌 것이다.

재판부는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합리적·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경영상태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향후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앞서 항소심은 회사가 근로자들 요구에 따라 6,295억 원의 추가 임금을 부담해야 할 경우 재무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며 '신의칙'을 적용했다.

또한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추가 수당 지급으로 중대한 경영 위기가 초래된다고 볼 수 없다"고도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 등 경영 지표가 2013년까지 전반적으로 양호했고, 중국 기업의 급속한 성장세, 동종업계 경쟁 심화 등으로 2014~2015년 무렵 악화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경영 악화는 예견할 수 없던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고, 기업 규모에 비춰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라고 못 박았다.

현대중공업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하겠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날 선고에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 입장과 차이가 있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노조 측은 "회사는 조속한 시일 내 미지급 임금 지급 계획을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날 현대미포조선 근로자들이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도 동일한 ‘신의칙 적용 기준'에 따라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은 "회사가 임금 소급분 868억 원을 감당하기는커녕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으로 재무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성명을 통해 "예측하지 못한 인건비 부담 급증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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