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경찰이 매일 위험도 판단하고 '가해자 격리'

입력
2021.12.16 04:00
10면
서울경찰, 스토킹 범죄 대응 개선 TF 대책 마련
현장관리자가 스토킹 사건 단계별로 지휘 
경찰, 위기·심각 단계서 유치장 격리 적극 검토
잠정조치에 시간공백...스토킹 외엔 적용 안 돼
"실효성 높이려면 법제도 개선... 전문성 높여야"

경찰이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와 그 가족이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가해자 격리'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피해자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해자 강제 격리가 가장 확실한 대응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실제 처분을 받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스토킹이 아닌 일반 성폭력 범죄 관련 신변보호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아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력을 적극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경찰청은 15일 조기경보 시스템을 도입해 위험 단계에 따라 현장 관리자가 지휘하고, 현행범 체포와 유치장 유치 등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스토킹 범죄 현장대응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서울 중구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및 송파에서 벌어진 신변보호자 가족에 대한 보복살인 사건에서 경찰의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내놓은 보완책이다.

경찰에 따르면 앞으로 일선 경찰서에선 매일 스토킹사건 관련 '위험경보 판단회의'를 개최한다. 모든 사건의 위험 단계 등급을 △주의 △위기 △심각 3단계로 분류한 뒤 등급별 피해자 보호 매뉴얼에 따라 조치하게 된다.

주의 단계는 스토킹 행위가 단발성으로 발생한 경우를 말하며, 가해자에 대해 서면경고와 접근금지 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스토킹범죄 전력이 1회 이상 있고, 최근 5년 내 신고·수사·범죄경력이 2회 이상 또는 상해·폭행·주거침입 등 직접적 물리력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위기 단계로 분류한다. 이 단계부터는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 4호(유치장 유치)를 적용해 피해자로부터 격리한다. 가해자 입건 및 관련자 조사 등 후속 조치도 지체 없이 진행한다.

위기 단계 조건에 더해 가해자가 정신병력이나 약물중독 증상이 있거나 앞서 적용된 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를 위반한 경우 심각 단계로 격상한다. 피해자에게 살해 협박을 하거나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면 다른 요건 없이도 즉시 심각 단계로 판단한다. 이 단계에선 통신 영장을 신청해 피의자 위치를 확인하고, 잠정조치 4호 및 구속영장을 필수적으로 신청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가 경찰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착되도록 각 단계별로 주의 단계는 계장과 팀장, 위기 단계는 주무과장, 심각 단계는 경찰서장이 지휘하도록 했다.

경찰은 스마트워치 위치값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에 따라 112신고 접수시 해당 장소로만 출동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신고자 주소지와 직장 등에 동시 출동하는 방식으로 지령 시스템을 보완하기로 했다. ·

"잠정조치, 시간공백·사각지대 보완 시급"

경찰 안팎에선 잠정조치(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유치장·구치소에 인신구속)가 피해자의 신변 위협을 해소해줄 것으로 평가했지만, 신속한 판단과 법 집행이 필요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 범죄는 긴급성과 위험성을 판단해 신속하게 차등 대응하는 게 핵심"이라며 "현장에서 이를 판단할 경찰관의 전문성과 신속한 가해자 분리를 위한 제도적 근거가 마련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잠정조치는 경찰이 신청한 뒤 검사의 청구와 법원의 승인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인신구속까지 가는 경우도 많지 않은 편이다. 스토킹 살해사건 피의자 김병찬도 잠정조치로 피해자에게 접근 금지 통보를 받았지만, 인신구속은 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법원 판단까지는 개입할 수 없지만 경찰 입장에선 최대한 빨리 조사를 시작하고, 조사 단계부터 피의자 격리와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잠정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신고 당시 구체적 진술, 문자나 협박, 목격자 진술 등을 최대한 확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토킹이 아닌 성폭력 범죄로 인한 신변보호 사건은 유치장 유치 등 잠정조치가 적용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변보호자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은 당초 스토킹이 아닌 성폭력 감금으로 신고돼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잠정 처분을 피해갈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다양한 종류의 신변보호 사건을 커버하려면 스토킹 처벌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강간 감금 살해 협박은 강력 대처가 필요한 사건이라, 최근 사건을 계기로 현장에서 더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한슬 기자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