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모금에 영수증 한 장 없어' 팬심 멍들이는 '총공' 횡령

입력
2021.12.12 12:00
아이돌 등 응원 위해 팬들 기부받는 '총공'
불투명한 운영으로 횡령 피해 늘고 있어
수백만원 비용에 단체 소송도 쉽지 않아
"온라인 다중사기 맞춤형 법안 필요" 지적


"어린애들도 용돈 꼬박꼬박 모아 기부하는 건데, 찔리지도 않는지 궁금하네요"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의 2년차 팬 김모(18)씨는 '총공팀'의 횡령 사건을 이야기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비와 용돈을 모아 총공 모금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땐 6,000 원~5만 원, 돈이 모일 때마다 보냈다. 적은 금액이라도 좋아하는 가수가 성공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총공팀은 모금 의도대로 음반을 사거나 광고를 올렸다며 사진을 공유했지만, 전체 모금액이나 지출 잔액 등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래도 어련히 알아서 잘 운영하겠지 하며 넘어갔다.

그러던 5월, '총공팀이 2,000만 원 규모의 모금액을 일부 횡령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통장 입출금내역엔 계좌주인이 모금액을 70회 이상 사적으로 이용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횡령이 이뤄진 기간이 무려 2년"이라며 "총대(모집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를 흥행시키기 위해 모금을 받아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총공(총공격)팀'의 횡령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5월엔 그룹 스트레이 키즈, 지난달엔 그룹 SF9 총공 팀원이 적금이나 네일아트 등 개인 용도로 모금액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누군지 알 수 없는 SNS 이용자가 다른 팬들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아 마음대로 쓰면서도 구체적 증빙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 피해를 입은 팬 입장에서도 적극 대응이 어려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이돌부터 트로트 가수까지...영역 확장 중인 총공 문화

총공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이돌 가수 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응원 문화다. 가수가 신곡을 발표하기 2, 3주 전부터 총대가 SNS에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활동을 도와줄 '헬퍼'와 활동비를 기부할 '기부자'를 찾는다. 음원 순위 상승, 지하철 광고, 시상식 투표 독려 등 활동마다 모금은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개인이 기부하는 금액은 수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제각각이다.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하면 총공팀이 스티커나 엽서 등 자체 제작한 상품을 보내주기도 한다. 총공 활동을 이끄는 총대와 헬퍼는 활동비를 받지 않고 무료로 일한다.

총공 문화는 여러 분야에 퍼져 응원 문화의 핵심이 됐다. 최근엔 트로트 가수, 뮤지컬 배우 등을 위한 총공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케이팝(K-POP)을 중심으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면서 해외 팬들까지 나서서 참여할 정도다.

익명 계정 통해 진행... 횡령 손쉬운 구조

총공팀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기부금을 받아 대신 운영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용 계획을 미리 알리는 곳도 찾기 어렵다. 이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만큼, 기부하는 다른 팬들도 '좋은 뜻'을 믿고 내용 증빙을 꼼꼼히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금과 지출이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SNS 계정을 통해 이뤄지는 점도 횡령을 쉽게 만든다. 지난달 모 남자 아이돌 그룹 총공팀에 두 차례 기부했다는 신모(24)씨는 "활동이 전부 익명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횡령이) 가능한 것 같다"며 "그래도 총공팀을 믿기 때문에 의문을 갖지 않고 기부하는 건데 (횡령 소식에) 당황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설사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해도 피해를 입은 팬들이 법적 절차를 밟기는 어렵다. 피해자 상당수가 미성년자인 데다 개별 피해 금액이 소액이라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단체 손해배상소송은 착수금만 300만~500만 원이다. 소송에 이겨 손해배상을 받는다 해도 들어간 비용이 더 커 손해인 셈이다.

피해자의 나이와 국적, 모금 경로가 다양해 이들을 한데 모으기도 힘들다. 문제가 된 총공팀에 여러 차례 기부했던 홍콩인 셰어(Cher)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해외에선 응원할 방법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 팬들을 믿고 돈을 보내 '대리 응원'을 부탁했던 것"이라며 "(횡령 사실이 밝혀진 후) 기부에 동참했던 해외 팬들끼리 모여 고소를 해보는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한국의 법을 몰라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답답해했다.

"온라인 다중 소액 사기 구제할 방안 필요해"

법조계에서는 일부 총공팀의 깜깜이 모금·지출이 횡령·사기죄 외에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1,000만 원 이상을 모금하려면 모집·사용계획서를 써야 한다. 또 모금액이 1억 원 이하일 땐 기부금품을 사용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영수증 등 지출증명 서류도 관련 기관에 내야 한다.

하지만 기부금품법은 만들어진 지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주로 발생하는 총공팀의 다중 사기 범죄를 규제할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온라인에선 물리적 제약이 없어 많은 사람이 예전보다 쉽게 모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때로는 이 같은 익명성 때문에 사기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총공팀의 횡령 사건은)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 사기라 기부금품법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며 "요즘 자주 발생하는 소액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선 모금 가능 요건을 명확히 하고, 중개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다중사기범죄 피해방지법' 같은 맞춤형 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