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입시제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퇴행'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학력고사의 단점인 암기식 교육의 문제점을 줄이고자 1994학년도 입시에 처음 적용된 수능은 처음 본고사 부활과 함께 설계됐지만, 본고사는 시행 3년 만에 사라졌다. 논술 전형 때문에 사교육이 또다시 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비중이 줄었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이번에는 계급 불평등 이슈가 불거졌다. 그사이 수능은 사교육에 점령당했고, 최신 입시 전략을 선보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교육과 부동산 1번지가 됐다.
심증은 가지만 입증할 팩트가 부족했던 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나왔다. 대치동에서 논술 강사로, 입시 컨설턴트로 일했던 전직 학원장 조장훈씨가 쓴 '대치동'(사계절 발행)이다.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대치동을 "한국사회 세속적 욕망의 전형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수능 두 번째 해인 1995학년도 입시에서 최고 명문대 문과에 합격한 조씨가 학원가에 발을 들인 건 3년 뒤인 1998년 무렵. 본고사가 없어지고 각 대학이 논술의 비중을 키우던 때였단다. 그러나 이후 대입 전형의 변화로 논술 시장이 부침을 겪으며 원생들을 대상으로 '서비스'한 입시 컨설팅을 2015년 유료화했다. 수험생 학부모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팟캐스트 '대치동 엄마도 모르는 진짜 입시 이야기'도 운영했다.
-입시 논술 강사로 대치동에 발을 들였다. 대치동 입시전략이 치밀하다는데, 입시 전략이 어떻게 바뀌었나.
"논술은 ①수능 초기 본고사 시절 ②1997~2004년 본고사 비슷한 논술고사 ③2005~2012년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 제시 ④2013년 교육부 고교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사업 이후 등 4개 시기로 나뉜다.
본고사 시절 논술은 문·이과 구분도, 제시문도 없었다. 1995학년도 당시 서울대 문제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유기적 연결성 논의성을 축으로 하여 오늘날 여러분의 할 일을 1200자로 제시하라'였다. 대부분 자기 소개서 같은 글을 쓰고 나왔다. 학생들이 워낙 못 쓰니까, 1997년부터 논술이 바뀐다. 문제만 주면 글을 못 쓰니까 일종의 레퍼런스, 제시문을 준 거다. 대치동에 논술 학원이 많이 생긴 게 이때다.
커리큘럼을 보면 철학사나 근대사상의 이해가 많았고, 관련 주제로 완결된 글 쓰는 훈련을 많이 했다. 2006학년도 이전까지는 글 써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수능 끝나고 한 달 정도 근대성에 관한 개념을 가르치고, 단기간 글쓰기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논술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대학들은 논술에서 변별력을 높이고 싶어했다. 문과는 영어 제시문, 이과는 수학, 과학 제시문이 등장하며 본고사와 논술의 경계가 사라졌다. 그래서 교육부가 영어 제시문을 없애라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대학들은 '통합교과 논술'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평가 요소를 넣은 논술 문제를 만든다. 독해, 추론, 논리력을 보는 수준 높은 문제까지 나왔다. 잠깐 주워들은 개똥철학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혀서는 합격할 수 없게 된 거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정시 논술을 폐지하며 선발 인원이 크게 준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진 수시 논술 유형의 뼈대가 지금까지 거의 유지되고 있다. 이 시기 대치동 학원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이뤄졌다. 논술 1세대 학원들이 다 무너진다. 원생 규모를 줄인 학원도 있고, 새로 뜬 학원도 있다. 저는 MB 정부가 시작된 2008년 이후 8명 이하 첨삭지도 방식으로 바꿨다. 그 전에는 200명 앉혀놓고 수업한 적도 있다. 2013년 이후 '고교교육 정상화' 정책으로 논술 전형 규모를 축소하는 대학이 지원받고, 제시문의 교과서 의존도가 높아졌다. 대학이 평가 요소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홈페이지에서 제출 문제를 다운받아 독학도 가능했다."
20년 전부터 대치동은 ①잘나가는 학원 ②새로 지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사는 모양이 달라졌다. 1970년대 강북에 있던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사를 하며 주목을 받았던 대치동은 이제 4개 종족으로 계급화됐다는 게 조씨의 분석이다.
먼저 ①대원족. '대치동 원주민'의 줄임말인 대원족은 1970년대 아파트를 분양받아 대치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고소득층이나 전문직 출신의 고령자다. 그다음 ②연어족. 대원족의 자녀 세대로, 결혼 후 자신이 자란 동네로 돌아온 이들이다. 타워팰리스, 도곡렉슬 등 도곡동과 한티역 일대에 자가로 산다. 남은 둘은 ③대전족과 ④원정족이다. 대전족은 '대치동 전세족'의 줄임말, 원정족은 서울 비강남권이나 지방에서 자녀를 대치동 학원으로 보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대치동을 떠나지 않는 이유, 탁월한 교육 인프라와 그로 인해 식지 않는 부동산 열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내신과 수능 점수 그러니까 학습 실력 자체를 올려준다면, 입시 컨설팅은 같은 실력에도 '더 나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한다.
-내신 성적이 비슷해도 수시모집에서 비교과 같은 변수로 합격 여부가 달라지나
"그렇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세부특기사항, 자기소개서나 추천서로 정성 평가하는데, 대체로 교육열이 높은 학교일수록 더 많은 활동을 기획한다. 비교과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학사 관리가 잘 이뤄진 학교일수록 학생부 내용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
특목고는 선택 과목으로 심화 과정을 만들 수 있어 서류에서 고교 이름을 블라인드 처리해도 어떤 교과를 이수했는지 보면 (특목고인지 일반고인지) 안다. 현실적으로 고교별, 지역별 차등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학종은 좋은 입학 전형 방식이지만, 일정 비율 이상 늘면 안 된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입시제도가 필요하지만 개별 학생에게 맞는 전형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거다. 2015년부터 교육부가 학생부 기재 요령을 내놓으면서 외부 활동 내용을 적지 못하게 했다. 바뀐 기재 요령에 맞춰 빨리 대응 방안을 찾는 학교가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낸다."
-지난 20년 동안 어떤 입시제도가 사교육의 영향을 가장 덜 받았나
"사교육에 의존하는 건 입시제도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 불평등할 거면 차라리 모든 수험생이 다 같이 수능만 보는 게 공평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은데, 수능 점수와 사교육비 지출 사이에 상관 관계는 분명하다. 상위권일수록 수능을 위한 사교육을 받고 하위권일수록 내신을 위한 사교육을 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면 대치동은 내신 사교육 안 할까. 대치동 학원들의 내신 대비 기간이 10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 2010년만 해도 3, 4주 정도였다면 수능 영어가 절대 평가로 바뀌면서 지금은 대부분 8주 동안 운영한다. 입시 전형이 바뀌면 거기 맞는 새로운 사교육 상품이 마련된다. 교육열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아무리 좋은 입시제도라고 해도 빈틈을 찾기 위한 노력, 경제적으로 더 풍족한 사람이 (성과를) 독과점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특정 입시제도에 올인하는 시스템은 퇴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조씨를 비롯한 입시 전문가들이 입시 전략을 짤 때 참고하는 자료가 '기밀'은 아니다. 이들은 ①대학교육협의회의 모집요강 ②각 대학의 홈페이지에 걸린 입학안내 ③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모의 문제 등이 주요 정보원이다. '대치동 학원들도 다른 유별난 자료는 없다는 거냐'라는 질문에 그는 "경쟁력의 차이는 자료의 해석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들이 입시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만, 정확도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한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갖가지 통계 정보, 전문 용어가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공개된 자료를 취합해 대학 입시 유형별 유·불리를 판별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사교육업체 도움 없이 대입을 준비한다면 입시 정보와 기준점을 알 수 있을까
"정보는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 대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자들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대교협의 대학별 입시정보를 볼 때, 합격자의 내신등급 범위만 보는 건 의미가 없다. 내신등급 평균치를 봐야 하고 모집 정원이 몇 명인지도 중요하다. 그래야 분산 수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각종 입시제도에 대한 정보 해석의 격차를 줄일 수만 있다면, 다양한 입시제도에 따른 불공정 시비를 줄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들이 입시에 활용할 수 있는 '더 쉬운' 통계를 교사들에게 제공하고, 교육당국도 활용 방안을 꾸준히 안내했으면 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사교육 담당자들이 공교육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그는 "다양한 교육 과정, 입시 중 학생 개인에게 맞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교육이 어김없이 그 자리를 파고든다"고 말했다.
조씨는 "교육의 자율성을 높이려면 고교학점제를 해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교육과정 설계 전문가가 전국에 329명밖에 없다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당국에서는 올해 안에 1,000명, 내년에는 1,600명까지 늘리겠다는데 그래봤자 전국 일반계고가 1,680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학교에 선택 과목 설계 전담 교사가 한 명이 채 안 된다. 명문대 합격을 위한 학점설계 컨설팅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