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5일 후 죽는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이렇게 예고하고 사라진다면 당장 뭘 해야 할까. '지옥'에선 이 기이한 현상을 '고지'라고 부른다.
배우 김현주는 "오케이. 알았어"라고 말한 뒤 마지막 집 청소를 하겠다고 답했다. 두려워 못 했던 일들에 도전하고 주변 사람들과 고마움, 미안함을 나누겠다고도 했다. 참으로 그다운 답변이었다.
26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김현주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사람들이 지옥의 사자들에게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이다.
김현주에게 '지옥'은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김현주는 이 작품에서 민혜진 변호사 역을 맡았다. 민혜진은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맞서는 인물이다. 민혜진의 화려한 액션은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김현주는 "이런 액션을 해본 건 처음이다. 이전엔 기껏해야 상대의 뺨을 때리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액션 연기를 두고 "걱정되는 부분도, 기대도, 설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준비 과정이 즐거웠다. 그동안 감정적인 부분에 치우쳐서 캐릭터를 준비해왔는데 이번엔 몸을 썼다"고 설명했다. "주먹 뻗기, 구르기 등 하나하나 가르침을 받으며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지옥'은 김현주와 극을 이끄는 또 다른 배우들의 완벽한 호흡으로 완성됐다. 김현주는 "유아인씨와 대적하는 관계였는데 오고 가는 힘의 균형, 호흡이 맞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나는 매 순간이 설렜고 기대됐다.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박정민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김현주는 그에 대해 "정말 영특하고 연기 천재같다"고 말했다. "계산돼 있지만 계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연기를 하더라고요. 노력들, 그리고 성실함이 보였어요. 고민을 많이 하는 게 느껴졌죠. 성의와 열정이 가득한 배우에요."
원진아의 연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단다. "체구가 자그마한데 에너지가 상당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 김현주의 설명이다. 그는 "연기를 한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큰 내공을 갖고 있더라"며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라고 덧붙였다. 양익준에 대해서는 "연기를 대하는 모습이 진중한데 귀여움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배우들인 만큼 호흡을 맞추기 전 김현주의 걱정도 컸다. "우린 너무 달랐어요. 연기하는 톤도, 색깔도요. 모였을 때 앙상블이 이뤄질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조화롭지 않은 모습이 작품 안에서는 신선하게 표현된 듯해요."
김현주는 자신의 새로운 매력을 끄집어내준 연상호 감독을 향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지옥'의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도 연 감독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는 "'부산행'을 좋아했던 관객 중 한 명으로서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김현주는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감독님이 캐릭터에만 신경 쓸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주셨다. 그래서 모든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거운 작품인데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감독님이 오히려 더 밝고 즐겁게, 배우들을 편하게 해주셨다. 리더십으로 작품에 대한 긴장도 늦추지 않게 해주셨다"고 밝혔다.
김현주는 차기작 '정이'도 연 감독과 함께한다. 그는 "이번에도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이다"라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분들이 생각하지 못하셨던 부분들을 제게서 발견하신 건지 그런 걸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감독님께서 새로운 시각으로 절 봐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죠."
김현주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배우들과의 완벽한 호흡을 담은 '지옥'은 지난 19일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