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화 가치가 하루 새 18% 폭락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2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 터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옹호하는 등 '비상식적'인 경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리라화 가치 하락은 터키의 통화위기로 이어져, 터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장중 18%까지 떨어진 달러당 13.465리라를 기록, 역대 최저치를 재차 경신했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50~60%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로 따지면 1,100원 정도의 환율이 1,700~1,800원까지 폭등했다는 얘기다.
리라화 가치가 추락한 배경에는 최근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옹호하고 나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있다. 앞서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석 달 연속 기준금리(현 15%)를 내린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 과정에서 물가가 치솟자 주요국들이 금리 인상에 나설 채비를 마친 것과는 정반대 움직임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연설에서 "더 높은 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을 '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지칭하면서, 이를 거부하고 "경제적 독립전쟁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터키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20% 가까이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이 고금리에 짓눌리는 걸 보고 있을 수 없다"며 금리 인하를 주장해 왔다. 지난 3월엔 앞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터키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하며 국내외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리라화 가치 급락으로 기업들의 외화 부채가 급증하고 이미 극한 수준인 인플레이션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CNBC는 "현재 20%에 육박한 인플레이션은 8,500만 터키 국민들의 실질 임금을 심각하게 평가절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 역시 "경제 분석가들은 리라화 폭락으로 기업들이 외화 부채를 갚기 힘들어지고, 수입품 가격은 급등해 경제를 더욱 뒤흔들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팀 애시 선임 전략가는 "현재 리라화 가치는 터키의 정신 나간(insane) 통화정책을 반영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비뚤어진 경제실험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