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들의 놀이터

입력
2021.11.2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뭐 저렇게 사악한 어른이 다 있어?” 며칠 밤을 뒤척였다. 놀이터를 습격한 입주민 대표, 그를 향한 한탄이 가시질 않았다. 인천의 한 아파트 입주민 대표인 그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 중 단지 밖에 사는 어린이만 골라 관리실에 가뒀다고 한다. 기물파손이라며 경찰도 불렀다. 아이들에겐 “커서 아주 나쁜 도둑놈이 될 것”이라고 떠들었단다. 그를 원망하며 며칠이고 길을 걷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털었다. 그러다 문득 아픈 자각이 스쳤다. 이 놀이터 빌런은 과연 아주 특별히 사악한 돌연변이였을까.

정도만 다를 뿐 아이들과 우리가 부딪히는 일상은 놀이터 빌런의 세계관과 닮아 있다. 이 세계의 도시는 아파트 단지인 곳과 아닌 곳, 즉 안과 밖으로 양분된다. 말쑥한 커뮤니티 및 편의 시설, 국공립 어린이집, 공원, 놀이터는 대체로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 시민을 위한 궁궐이나 공원은 없어도 입주자를 위한 팰리스, 캐슬, 파크는 있는 세상이다. 안전과 녹지와 편의는 시민 모두가 아닌 울타리 안의 입주자, 소비자, 고객님들에게 더 각별하게 제공된다. 혹은 그렇다고 상당수가 믿는다.

이곳에서 시민은 자연스레 이웃 삼아야 할 너와 내가 아니라 비용을 지불한 자와 아닌 자로 나뉜다. 지불할 돈이 어디 좀 비싼가. 그 큰돈을 마련하기란 또 좀 힘든가. 아파트 단지 밖 시민을 무임승차자로 여기는 것, 즉 나만큼은 푸르르고 안전해도 좋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고회로는 흔해진다. ‘모질지만 이해도 되는’ 범주로 통한다. 아이들을 골라내고 가두고 폭언을 퍼붓는 광기가 들통나기 직전까지는.

과연 낯선 풍경일까. 엘리베이터에 ‘배달기사 이용금지’를 써 붙인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에 반대한다. 신축 아파트 지상 공간을 택배차량이 가로지르는 건 큰일 날 소리다. 인근에 장애학교나 청년주택 건립은 단연 결사반대다. 주민 인식표를 받은 아이만 놀이터를 쓸 수 있단 안내문도 붙는다. 모진 심성과 민족 근성을 자학한다고 해결될 일일까.

담장 안쪽만이 안전하다고 온 세계가 외쳐대는데. 자칭 좌파조차 2주택 보유가 기본이고 개천 탈출에 물불 안 가리는데. 당장 겸연쩍은 표정으로 남의 단지 안을 들여다볼 일이 없는 이들로 당정청이 가득 차 있는데. ‘마음씨 착하게 씁시다!’를 외쳐 해결될 일이 아닌 걸 다들 아는데. 생존에 대한 욕망, 안전에 대한 강박에 지나치게 솔직한 일상의 빌런이 넘친다.

‘한국인만 유일하게 가족 대신 물질을 택했다’는 뉴스가 곳곳을 장식 중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17개국 1만8,000여 명에게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물었는데 한국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는 것이다. 다른 데선 가족, 직업, 물질적 행복 순이 흔했다. 우리만 압도적 물질주의와 황금 만능주의에 빠진 냉혈한으로 진화한 것일까. 내겐 한국에선 평범한 시민에게조차 가족이라도 지킬 필수 수단이 물질이라 여겨진단 뜻으로 읽혔다. 고객님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아이가 “도둑놈” 소리까지 듣고야 마는 세계에서 누군들 초연할 수 있을까.

마을은 없고 단지는 있는 사회, 공공 녹지와 공원은 드물고 고품격 전용 공간은 넘치는 사회, 시민은 없고 고객님은 있는 사회. 아이들의 손을 잡고 탈출하고 싶은 곳은 비단 폭언이 쏟아지는 아파트 관리실이 아니라 이런 물질주의의 거대한 놀이터 혹은 전쟁터다. 비단 마음씨 문제가 아니다. 단 하나의 솔루션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모두가 모든 걸 다해야 이룰까 말까 한 대탈출이다.

김혜영 커넥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