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의혹 철저히 규명한다더니

입력
2021.11.16 04:30
수정
2021.11.16 14:23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군가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나에게 맡겨진 일이 정답과 오답이 명확한 모의고사 같을 리 없고, 내놓을 결과물 역시 평가 기준은 가지각색일 테니 말이다. “왜 그것밖에 못 하냐”는 식의 무능력자 취급엔 “왜 그걸 못 알아주냐”는 섭섭함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경기 성남시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가 막바지로 접어든 듯하다. 검사 17명의 전담수사팀이 꾸려진 게 9월 말이었으니, 예전 수사만 비교해 봐도 ‘막바지이거나 막바지여야 할 때’가 되긴 했다. 모르긴 몰라도 수사팀 검사들 머리 속에도 끝내기라는 말이 맴돌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시점은 아마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의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22일 전후가 될 듯하다.

끝이 보인다는 건 ‘평가의 시간’이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점수는 평균 이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칭찬이나 갈채보단 책망이나 질책이 앞서기 마련인 ‘검찰 디스카운트’를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 한들 평점이 다를 것 같진 않다.

처음은 좋았다. “시작이 이보다 좋을 순 없다”던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간부의 말처럼, 기대도 컸다. 무엇보다 정영학이라는 핵심 인사가 수사팀에 넘겨준 ‘녹취록’의 존재감이 컸다. 열어보기만 하면 될 ‘판도라의 상자’가 손에 들어간 듯 보였다. 정영학이 누군가. 회계사이자 개발사업 쪽에선 으뜸으로 치는 전문가였고, 15년 이상 대장동에서 전체적인 사업 구조를 만들어 구현해 낸 인물이었다.

그런데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개발수익을 민간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몰아줬다는 사실에도 혐의는 성남도시공사와 김씨 등 화천대유 측 민간업자에게만 쏠려 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기소, 김씨와 남 변호사 구속 정도가 보이는 성과의 전부다. 수사가 깊이(성남시·이재명 후보 개입 여부)와 너비(법조계·정치권 로비)에서 모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지나온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을 대비할 때, 대장동 개발 특혜 수사가 현재의 성남 토건세력 비리 척결 수준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열심히 했고, 없는 걸 어떻게 하냐”는 반론은 가능할 것이다. 없는 죄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될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애당초 숲 속에 호랑이가 있는 것 같다며 총 좀 쏜다는 포수 십수 명을 한자리에 모으고, 한바탕 숲 속을 뒤집어 놓은 건 “특별하고 신속하게 치우침 없이 철저하게 진상규명하겠다”던 검찰이었다. 전담수사팀 구성을 승인하면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강조했던 “(수사에 대한) 강한 의지"는 다름 아닌 검찰총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종국에 가서 “숲에는 늑대밖에 없더라”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강조했던 의지가 거짓이었다고 의심해야 할까, 그게 아니면 검찰의 무능력을 안타까워해야 할까.

물론 결론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수사팀에서 뭔가 엄청난 반전을 준비 중일지도 모르니,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겠다. 하지만 수사 결과가 공개된 그날, 난 수사를 평가할 것이고, 검찰 내 누군가로부터 곧 섭섭하다는 말을 들을 것만 같다. 경험상 이런 류의 예감은 슬픈 예감 못지않게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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