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과 5공화국 탄생의 주역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을 떠받친 군내 사조직 ‘하나회’ 멤버들을 비롯한 제5공화국 실세들의 근황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5공을 지탱한 ‘2인자’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과 이른바 ‘쓰리 허’ 가운데 허화평ㆍ허삼수 등은 모두 하나회 일원이었다.
전씨의 ‘심기경호원’을 자처한 장세동씨는 1979년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으로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전두환 정권에서 대통령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안기부장에서 물러났지만 전씨에 대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5공 비리 국회 청문회장에서 그는 전씨 혐의에 대해 일절 입을 다물었다. 전씨 부고가 전해진 뒤 전씨의 서울 연희동 자택에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 그다. 2002년 무소속으로 대선에 도전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5공 설계자’인 허화평씨는 전두환 정권의 최고 실세로, 허삼수, 허문도와 함께 ‘쓰리 허’로 불렸다. 전씨 비서실장으로 12ㆍ12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5공 출범 후 청와대 정무1수석비서관으로 전씨를 보좌했다. 군사반란의 또 다른 주역인 허삼수씨도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육사 동기인 허화평씨와 허삼수씨 둘은 전씨의 눈 밖에 나서 나란히 청와대를 떠났다. 1982년 ‘장영자ㆍ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에 이순자씨의 친척이 연루되자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한 것이 죄목이었다. 둘은 이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로 진출했다. 허화평씨는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지만, 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렸던 허삼수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화평씨는 빈소에서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때 전씨가 발표 지시를 했는지에 대해 “물어보지 말라.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인 허문도씨는 ‘쓰리 허’ 가운데 유일하게 ‘전두환의 청와대’를 끝까지 지켰다. 1980년 신군부에 발탁돼 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내며 당시 언론 통폐합을 주도했다. 2016년 세상을 등졌다.
1공수여단장과 3공수여단장으로 군사반란에 가담한 박희도, 최세창씨는 2019년 12월 12일 전씨와 함께 서울 강남의 고급 식당에서 샥스핀(상어지느러미 수프)을 곁들인 오찬을 즐겨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마침 쿠데타 발발 40년째가 되는 날이라 ‘반란 40주년 자축연을 벌인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