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말,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이 전체의 40%를 넘어섰다. 세계적인 현상이니 그러려니 하기에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독거노인의 고독사와 청년 1인 가구의 빈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숙제였고, 혼밥과 혼술은 더 이상 생경한 풍경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고 함께 놀고 싶어한다. 도시 공간도 가상현실을 넘어 메타버스까지 확장되면서 사람들의 만남을 더 쉽고 빠르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초연결 시대에 '나홀로 가구'가 증가하는 이 모순적인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1인 가구 1,00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1인 가구 증가 속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1980년 5%에 불과했던 1인 가구 비율은 2020년에 32%로 무려 27%포인트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3%에서 28%로 5%포인트 증가했고, 독신가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은 1980년 20%에서 2015년 35%로 15%포인트 증가했는데, 이 속도로 볼 때 2020년에도 40%를 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 비율이 40%를 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유엔 자료를 보면, 핀란드가 2010년 기준 41.0%로 가장 높고 2011년 기준으로 노르웨이가 40.0%, 독일이 39.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의 비중이 높은데, 아마도 이 세 나라는 현재 40%를 넘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짐작이 맞다면 결국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네 번째 또는 다섯 번째로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나라일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가구 구조가 선진국형이 된 것이니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1인 가구 비율이 35% 내외이며 2, 3인 가구가 45% 내외다.
사실 우리나라 청년 1인 가구는 그 역사가 꽤나 오래됐다.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 많은 청년들이 일하기 위해,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공장 근처 기숙사나 허름한 단칸방, 하숙집이었지만 단기로 머물렀다는 특징이 있다. 당시 1인 가구는 머지않아 2인, 3인 가구로 확장됐다. 그러므로 그때의 1인 가구는 사회가 장기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은 지금의 1인 가구와는 다른 생활을 했다. 홀홀단신 상경했지만 처지가 같은 동료들끼리 낯선 타지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생활했다. 하숙집 주인을 ‘어머니’로 불렀고, 고향이나 출신 학교가 같으면 바로 형, 동생이 됐다.
이러한 1인 가구는 '1인용 주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과거 단독주택에 세들어 살던 1인 가구는 좋든 싫든 많은 공간을 서로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방마다 주방이 있는 구조가 아니었으므로 부엌을 같이 쓰거나, 주인집과 밥을 같이 먹는 경우가 많았다. TV는 한 집에 한 대뿐이니 인기 드라마는 모두 거실에 모여서 봤고, 급한 연락은 주인집 전화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방은 따로 쓰지만 먹고 씻고 쉬는 공간을 공유했으니 불필요한 간섭에 시달릴지언정 고립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옥탑방, 반지하, 원룸이 많아지면서 1인 가구는 독립 내지 고립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이런 경향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 거실 TV는 가족들도 모으지 못할 지경이니 셋방 청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대거상'을 받아 화제가 된 윤고은의 2009년 소설 '1인용 식탁'에는 거의 매일 혼밥을 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지겹기도, 두렵기도 한 점심을 혼자 먹는다. 그녀는 특히 고깃집에서 홀로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때는 마치 사각의 링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느낀다. 식당 안 타인들의 시선은 라이트 훅, 레프트 훅처럼 아프다. 주인공은 혼자 당당하게 밥 먹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을 다녀보지만 여전히 혼고기와 혼술은 에베레스트 등반에 비길 만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혼술까지는 몰라도 혼밥은 흔한 일상이 됐고, 구내식당뿐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혼밥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그들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영혼의 친구인 스마트폰을 보며 쉴 새 없이 문자나 톡을 하며 소통하고, 영상을 보거나 온라인에서 여러 명이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혼자이나 혼자가 아닌 이중 생활을 한다고나 할까.
전에 비해 나홀로족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혼자는 위험하다. 물리적인 분리는 때로는 생각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동료들과 밥을 먹고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여도 결국 방에는 나 홀로 남게 된다. 톡이나 문자가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빈곤한 1인 가구의 경우 물리적 분리가 정신적 고립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독립된 부엌과 방이 있지만 그 안에서 충분히 먹고 쉴 수가 없으니 자유롭고 즐겁기보다는 외롭고 우울해지기 쉽다. 이들은 결국 고독한 1인 가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청년 고독사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1인 가구의 급증은 우리 도시공간에 큰 변화와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자료를 분석해보면 1인 가구는 평균 50.5㎡의 주거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반면 셋집에 사는 1인 가구는 평균 36.5㎡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20㎡가 안 되는 원룸이나 고시원에 살고 있는 1인 가구도 다수 존재한다. 당연히 과밀(overcrowding)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건강할 리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각계의 연구에 의하면 과밀주거는 수면호흡장애를 일으키고 심리적 고통(psychological distress), 알코올 남용, 우울증 등을 심화시킨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1인 가구 최저기준 면적이 아직도 14㎡라는 사실은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2004년 12㎡에서 거의 20년 동안 단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과연 이 정도 기준으로 1인 가구의 건강한 생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비단 단순 주거공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공간 또한 절실하다. 과거 하숙집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밥을 같이 먹으며 안부를 묻고 감기약이라도 사다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유 공간(shared space)이 필요하다. 가상공간과 메타버스로는 한계가 있다. 화면으로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가 이들을 품고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공유주택이나 공동체주택은 매우 좋은 대안이다. 예를 들면, 북유럽의 코하우징은 1인 가구를 포함해 다양한 가구가 한 건물에 살며 공동식당과 빨래방, 운동실, 취미실, TV룸 등의 공유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삶을 나눈다.
1인 가구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품어 줄 것인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중요한 구성원이자 도시의 건강성을 좌우할 핵심계층이 되었다. 청년에서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1인 가구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시급한 선결과제라 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공동체주택과 공유주택, 독신자들을 위한 커뮤니티시설 등을 대폭 확충해서 그들이 적절한 교류를 할 수 있는 포용적인 도시공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