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두 번의 실패 세 번째 등판

입력
2021.11.18 18:00
26면
대통령 둘 만들고 사과한 킹메이커 
당선 성공보다 성공한 대통령이어야
윤석열과 가치 공유하는 동행인가

‘안철수 리스크’를 자초했다는 비판에도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분명 국민의힘 승률을 높일 인물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공청회를 열고선 징계 않고 뭉개던 정당에서, 무릎을 꿇고 “5월 정신 훼손”을 사과한 것이 그였다. 세월호 막말 의원을 제명 못 해 우왕좌왕하던 당에서, 그의 옹호자 영입을 취소한 것 역시 김 전 위원장이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행보가 뭐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그 지당한 일을 김종인 이전 국민의힘에선 왜 아무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싶다. 상식적 판단과 합리적 정책 콘텐츠라는 그의 덕목으로 국민의힘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런데 김종인의 선택은 왜 윤석열 후보인 것일까.

반문의 상징이란 점 외에 어떠한 신념(즉 김종인의 신념)도 새길 수 있는 미완의 신인, 빈 서판(Tabula rasa)으로서 윤 후보를 낙점한 게 아닌가 싶다. 김 전 위원장은 몇몇 인터뷰에서 “윤석열이 돼야만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다” “정치를 처음 해보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사람에 집착하면 성공 못 한다”며 선대위를 전면 재편해 “파리떼”를 청소하도록 압박했다. 앞서 두 대통령을 도울 때도 ‘주변 평가’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까운 가족이 없는 등 “주변이 간단”하고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여 괜찮게 봤고 처음 문재인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에워싸고 있는 그룹”으로 “주변이 복잡”해서였다(김종인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 그러니까 김 전 위원장은 세력이 두텁지 않은 사람을 밀고 싶어한다. 자기 말이 먹히지 않을 만큼 소신이 확고하면 또 거들떠보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윤 후보) 주변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으면 뭐 하러 가냐”는 말은 더 선명하다. 그렇게 해서 추구하려는 목표는 줄곧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을 성공한 킹메이커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스스로 실패를 인정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데 대해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고 회고록에 썼다. 박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지우고 창조경제를 내세우자 “사람을 잘못 봤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나는 그에게 이번엔 정말 배신으로 끝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선대위만 정비되면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건지 알고 싶다. 120시간 노동과 부정식품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장지상주의자 윤 후보가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발사주 의혹에 연루된 그가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개혁에 신념이 있을까. ‘건강한 페미니즘’과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주장하면서 양성평등사회를 구현하는 건 가능한가. 지금 언급한 것들은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전면개정한 국민의힘 정강정책인데, 윤 후보와 가치를 공유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토로했던 배신감도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애초에 신념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밀었으니 실패를 잉태한 성공이다.

김 전 위원장의 가치와 정책은 2021년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그의 세 번째 등판은 한심한 정치판의 현실을 드러낸다. 정당들이 진화하지 못하고 그에게 손을 내미는 게 애처롭다. 선대위가 뜻대로 정리되면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이 등판할 것이다. 나는 그가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하기보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바란다. 윤 후보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는다면 나서지 말아야 하고, 윤 후보의 능력과 가치를 확신한다면 윤석열의 콘텐츠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또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김종인의 배신이 될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