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의 배경은 19세기 초중반 영국이다. 해외 식민지인에 대해서는 물론, 자기 나라 안에서도 여성이나 아일랜드인, 노동자, 하층민에 대한 억압이 일상이었던 대영제국의 절정기에 가난한 고아 처녀의 위와 같은 생각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아기 때 부모를 여읜 제인은 친척집에서 자랐다. 외숙모는 제인을 학대하다 로우드 자선학교로 보낸다. 졸업한 제인은 손필드 저택에 가정교사로 취직한다. 저택의 주인인 로체스터 백작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로체스터가 정신병을 일으킨 부인 버사를 다락방에 가둔 채 제인과 또 결혼하려 던 사실이 폭로된다.
제인은 손필드 저택을 떠나 우연히 도착한 마을에서 교사로 일한다. 작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부자가 된 후 손필드 저택을 방문해보니 저택은 버사가 불을 질러 폐허가 되어 있었다. 버사는 사망했고 로체스터는 눈과 한쪽 손을 잃었다. 제인과 로체스터는 결혼한다.
주인공 제인은 독립적인 여성이다. 가난한 고아이며 여성이고 피고용인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 부유한 귀족이며 남성이고 고용주인 로체스터에게 외친다.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감정을 가진 존재이니 함부로 대하지 마라고.
이렇게 소설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의식을 담고 있으며 지금 읽어도 심리 묘사나 이야기 전개가 뛰어나다. '제인 에어'를 인생 소설로, 제인을 이상형으로 가슴에 품은 독자들도 많다. 그러나, 더 생각해보자.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위해 희생된 한 사람을. 다락방에 갇혀 살다가 제인의 합법적 결혼을 위해 죽어서 사라져줘야만 했던 버사를.
로체스터의 첫 부인인 버사 메이슨은 서인도제도에 있는 영국 식민지 자메이카 농장주의 딸이다. 자메이카는 1838년 영연방의 일원이 된다. 식민지 시절부터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본국에 저택을 짓고 자녀를 보내 교육받게 했다. 농장은 관리인에게 맡기고 본국으로 본거지를 옮겨 식민지 부재 지주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본국 의회에 진출하였기에 18, 19세기 영국 하원에는 '서인도제도파'로 불리는 의원들이 약 40명 정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권력자들은 서인도제도의 설탕 부자들이 정치적인 힘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본국의 상류 계급 영국인들은 서인도제도의 백인들을 같은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했다. 혼혈인은 물론,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도 다 '크레올'이라 부르고 인종적 편견을 조장했다. (서인도제도에서 크레올이란 용어는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만 가리키는 용어인 남아메리카의 '크리오요'와 다르게 쓰인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기, 백인 농장주들과 관리인들은 노예 여성을 성노예로도 삼았다. 본인들이 성폭행했으면서도 원주민 여성의 품행을 탓했다. 혈통에 흐르는 흑인들의 성적 방종과 광기가 모계로 유전된다며 크레올 여성을 비난했다.
영국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크레올 여성은 인기있는 신붓감이었다. 귀족 부모들은 작위와 영지를 상속받지 못하는 장남 이하 아들들이 서인도제도의 대농장주 딸들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제인 에어'에서도 로체스터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인 에드워드 로체스터를 서인도제도의 대농장주 딸인 버사와 정략결혼시킨다. 결혼 후 자메이카의 처가에서 4년간 안락하게 지내던 로체스터는 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버사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다. 백작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은 후 손필드 저택 다락방에 버사를 가둔다. 이유가 뭘까?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계로부터 유전된 광기를 보여서'라고.
'제인 에어'가 출판된 1847년 당시에는 정신 이상자로 진단받은 크레올 출신 아내들이 많았다. 고향과 친지들을 떠나 낯선 곳으로 왔기에 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 많은 여성들이 집단으로 발병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단서는 1870년에야 제정된 '기혼여성재산법'에 있다.
1066년, 노르망디 공작 기욤이 잉글랜드를 침략해 정복왕 윌리엄이 된다. 노르만인들과 함께 들어온 대륙의 봉건제는 잉글랜드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켰다. 이전까지 영국의 남녀는 비교적 평등한 편이었다. 귀족 여성의 경우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었고 내키지 않는 결혼을 강요당하지 않았다. 과부의 유산 상속도 인정되었다.
그러나 봉건제가 실시되면서 바뀌었다. 전쟁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남성 기사들의 시대가 되자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는 약한 존재이자 가문의 재산이 되었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소유물이니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여성이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은 남편의 재산이 되었다. 친부모가 유산으로 만들어 놓은 연금도, 결혼할 때 가져온 지참금도.
영국에서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재산권을 되찾은 것은 1882년에 기혼여성재산법(the Married Woman's Property Acts)이 의회를 통과한 후부터다. 기혼여성재산법이 없던 시기 영국에는 서인도 농장주의 딸과 정략 결혼해서 아내의 재산을 손에 넣은 후, 크레올 아내를 광녀로 몰아 가두고 아내의 재산을 맘껏 쓰며 애인들과 자유로운 싱글 생활을 즐기던 귀족 남성들이 흔했다.
크레올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에 의사를 매수하여 서인도 출신 아내에게 정신병 진단을 내리게 하는 것은 쉬웠다. 19세기 정신의학계는 남성 위주였으며 여성의 히스테리나 광기는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귀족들만, 서인도 출신 아내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그 시절 남성이 싫증난 아내를 처리하는 흔한 방법이었다. 영국의 대문호인 찰스 디킨스(1812~1870)도 별거 중인 아내 캐서린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계획했다는 편지가 남아 있는 것이 한 예다.
이렇게 볼 때 버사가 광녀가 되어 다락방에 갇힌 것은 버사의 솔직하고 정열적인 성격이나 언행, 혈통을 혐오하는 영국의 백인 귀족 남성 로체스터의 횡포이거나, 작정하고 아내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음모였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샬롯 브론테는 식민지 크레올 여성인 버사를 희생시켜서 순수 영국 혈통 여성인 주인공 제인을 로체스터와 성공적으로 결합시킨다. 여성, 그것도 가난하고 못생긴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명작 '제인 에어'에서조차 영국 출신이 아닌 여성은 부당하게 그려진 것이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자신과 같은 가난한 목사 딸이나, 같은 혈통인 백인 영국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을까?
1966년 도미니카 태생의 작가 진 리스는 소설 '제인 에어'를 크레올 여성 버사의 입장에서 다시 쓴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를 발표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 운동과 흑인 여성 페미니즘 운동이 나란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로부터 젠더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장애 여부, 시민권 등 폭력과 차별의 오랜 역사적 맥락을 인식하는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이 등장한다.
제인과 버사의 경우처럼,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같은 여성이어도 여성이 겪는 폭력, 차별과 억압의 양상은 균등하지 않다. 그러기에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이고, 페미니스트들은 이기적이어서 여성의 이익만 챙긴다'라고 믿는 사람들을 보면 황당하다.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고통을 받는 단일한 여성 집단 자체가 아예 존재할 수 없기에 현실적으로 여성만 챙기고 싶어도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단일한 집단으로 균등하게 취급당하고 있다. 바로 투표권이 없는 집단으로. 20대 청년의 지지를 얻으려는 유력 대선 후보들이 20대 남성들만 투표권을 가진 집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알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