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아,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해본 신부님이 말했다

입력
2021.11.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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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진학이나 취업에 실패해서 죽고 싶다면서 연락해오는 청년들이 있어요. 당사자에게는 그 일이 인생의 전부처럼 보이거든요.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여러분 자신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제일 소중하다, 그러니까 행복하게 살자, 모험을 멈추지 말자.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청년밥상문간 운영자 이문수 신부


청년들에게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한끼를 제공하는 식당, 청년밥상문간을 운영해 화제가 됐던 이문수 신부가 책을 썼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책에는 이 신부가 지난 4월 출연한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못다한 이야기가 담겼다. 좋은 뜻이 널리 알려지면서 연예인과 기업들뿐만 아니라 소시민들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더 많은 청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발판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책에 성공담을 담은 건 아니다. 청년에게 건네는 위로에 가깝다. 이 신부는 직접 만났던 청년들의 사연을 전하면서 그들이 왜 힘든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젊으니까 그래도 굶지는 않으리라’는 통념을 무너뜨린다. 이번 주말로 예정된 출간을 앞두고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청년밥상문간 1호점에서 이 신부를 만났다. 이 신부는 대입에 번번이 실패하고 유학에서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인터뷰 내내 청년들을 향해서 “실패해도 괜찮다, 그것이 인생의 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2015년 서울의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지병과 굶주림을 홀로 견디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청년밥상문간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수녀들, 사제들의 도움도 받았다. 하지만 충격적 뉴스를 접했다고 모두가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다. 이 신부가 청년들을 돕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유학에 실패했던 경험도 자리잡고 있다. 신부가 된 이후 신학을 공부하려고 스페인으로 떠났다가 현지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은 끝에 학업을 포기한 것이다. 귀국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1년 이상 시간이 흐른 뒤였다.

스스로에게 실망했음은 물론이고 그를 스페인으로 보냈던 수도원의 기대를 저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 신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그렇지만 살아서 돌아왔고 실패 이후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신부는 “숙소에서 멍하니 앉아서 괴로워하는 날이 많았다”라면서 “그때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반대로 정말 하기 싫은 것을 강제로 하게 만들면 사람이 다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 신부가 청년들에게 하나의 길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는 실패한 청년들이 재기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책에는 청년들이 들으면 화가 날 만한 이야기도 있다.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자초하지 않은 일마저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메시지다. 이 역시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뒀다. 이 신부는 대입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아버지 탓이라 여겼다.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심리검사를 받은 과정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이 신부에게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건 이문수씨의 책임이죠”라고 단언한 것이다. 속으로 화를 삭이는 이 신부에게 의사가 덧붙였다. “이문수씨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이문수씨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이나 불합리한 사회에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에게 짐을 떠넘기자는 뜻이 아니다. 취업난부터 치솟는 주거비까지 청년들을 괴롭히는 세상의 질서가 청년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신부는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억울한 일이 생겼더라도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좌절하고 숨어들거나 세상을 등지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이다. 이 신부는 “거기 매몰돼 있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실패를 미화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그것을 견뎌낼 수 있도록 응원할 방법을 찾을 뿐이다. 그 노력이 이어져 청년밥상문간은 최근 서울 이화여대 주변에 2호점을 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청년밥상문간은 청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 이상을 꿈꾼다. “직영하는 점포가 100개가 넘어가면 청년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나마 안정적으로 소득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 이 신부는 “식당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 적자는 결코 나쁜 적자가 아니다”라며 웃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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