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고 장대한 불꽃'의 운명

입력
2021.11.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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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애기스 본파이어 참사

미국 텍사스주의 상징적 두 주립대학 오스틴 텍사스대와 텍사스A&M대는 역사와 규모, 석유공학 등 지역 특성에 근거한 전공분야에서 우위를 다투는 라이벌이다. 지금은 리그가 달라졌지만, 두 대학이 미식축구 빅매치를 벌이는 추수감사절 즈음이면 텍사스 전역의 두 대학 동문, 친지들의 신경전도 시작된다. 그 라이벌전의 불똥이 1999년 '애기스 본파이어(Aggies Bonfire) 참사'로 이어졌다.

텍사스A&M(Agriculture and Mechanical)대의 뿌리는 농학과 군사기술 위주의 기계공학이고, 대학 동문의 애칭 '애기스'도 'Agriculture(농업, 농학)'에서 유래했다. 애기스는 겨울 땔감을 준비하는 옛 농사꾼 전통을 좇아 10월 한 달간 나무를 베고 11월 초부터 장작을 쌓아 올려 빅매치 전야에 불을 점화하는 전통을 이어 왔다. 옛 전사들의 출정의식처럼, 빅매치의 사기를 고양하는 불꽃의 상징이 된 모닥불은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 갔다. 1933년과 1948년에는 비행기로 불덩어리를 투하하는 이벤트를 펼쳤고, 1956년에는 폭발물을 동원하기도 했다. 장작 높이만 33m에 이른 1969년 모닥불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텍사스A&M대는 캠퍼스 면적으로만 보면 미국서 6번째로 넓고, 석유산업 등 텍사스 기반산업 덕분에 기부금이 미국 공·사립 대학을 통틀어 빅10에 드는 부유한 대학이다. 모닥불을 피우는 날이면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 가족들도 캠퍼스 모닥불 주변에 모여 캠핑을 즐기고, 대학 측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9년 11월 18일, 18m 높이에 이른 5,000여 개의 통나무 더미가 붕괴하면서 작업 중이던 재학생과 졸업생 58명 중 12명이 숨지고 27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해 11월 25일 점화 의식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당시 주지사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촛불 추모행사로 대체됐다. 대학 측은 이후 공식 모닥불 행사를 폐지했지만, 2002년 이후 학생들이 주도하는 비공식 행사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