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을 대하는 기부 1등국의 일상

입력
2021.11.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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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보다 하루 지출이 두 배 정도 늘었다. 그래 봐야 한국 돈 2,000원, 커피 한 잔 포기하면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미처 잔돈을 준비하지 못한 날이면 출퇴근길이나 취재 오가는 길이 허전하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거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연말 3차 확산 우려에 제한 조치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지만 일일 확진자 숫자가 급감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됐다. 극심한 교통 정체도 되살아났다. 그 틈바구니에서 유독 더 늘어난 이들이 인형 탈을 쓰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바둣 맘팡(badut mampang)이다.

운전자들이 건네는 작은 호의가 이들의 밥벌이다. 요즘엔 어린 자녀를 대동한 엄마들이 많아졌다. 전염병 사태가 길어지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빈자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선 구걸이라고 선을 긋고 아동 학대라는 표현까지 쓰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돈을 주고 빌린 인형 탈로 보는 이에게 기쁨을 주는 작은 공연", "마땅히 둘 곳 없는 자녀들을 곁에서 보호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은 평범한 걸인을 뜻하는 픙으미스(pengemis)와는 구별된다.

각각 사연은 다를 수 있다. 다만 푼돈으로 한 식구에게 끼니를 선물할 수 있다는 선한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음 고백처럼 동참하는 교민도 많다. '해 질 녘, 마트 입구에 쭈그려 앉은 앵그리버드 탈 쓴 엄마와 예닐곱 살쯤 되는 아들이 눈에 밟혀 엄마에게 지폐를, 아이에게 우유를 쥐여주고 달아나듯 차에 탔는데 아이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히려 내가 감사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열악한 상황에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건 이 땅의 생활 습관인 기부 덕이다. 인도네시아는 영국 자선지원재단이 뽑은 '전 세계 기부 1등 국가'다.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인도네시아를 앞선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의 순위는 같은 기간 110위였다. 세상의 순위 경쟁이라는 게 대개 덧없지만 이것만큼은 부럽다. 오늘도 차창 너머로 돈을 건네며 그들에게 외친다. "스망앗(힘내세요)!"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