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폴란드 ‘난민 갈등’ 점입가경…나토까지 개입하나

입력
2021.11.15 17:15
EU, 벨라루스 친정부 20여 명 등 추가 제재 예고
폴란드, 나토에 긴급회의 소집 요구 방안 검토
미국, 러시아까지 가세하면서 양측 갈등 고조

동유럽 폴란드와 벨라루스의 ‘난민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그겠다”는 벨라루스의 위협에도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중동발(發) 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군병력을 투입한 폴란드는 급기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긴급회의 소집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14일(현지시간)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국경으로 난민을 몰아넣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제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제재 대상에는 벨라루스 친정부 인사 20여 명과 벨라루스행 항공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 시리아의 참 항공(Cham Wings), 난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있는 민스크 호텔 등이 대거 포함됐다. 보렐 대표는 “개인뿐 아니라 루카셴코 정권을 돕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날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과 나토에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나토 헌장 제4조에는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 혹은 국가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는 특정 회원국의 의견이 있을 경우 나토 회원국들이 함께 문제를 논의한다’고 규정돼 있다. 양측 갈등이 계속될 경우 나토군 파견 등도 검토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즈비그뉴 라우 폴란드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루카셴코 정권의 행위는 안보를 위협하고 분열을 퍼뜨리며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이뤄지는 러시아의 활동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과 폴란드, 다른 동맹은 해당 지역에서의 군사적 공격, 악의적 활동과 관련해 러시아에 중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데 단합돼 있다”고 이번 갈등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지목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루카셴코 대통령은 앞서 “EU가 새로운 제재를 가한다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끊겠다”며 위협했다. 유럽은 천연가스 35~40%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이 중 20%가 벨라루스를 통과한다. 벨라루스가 가스관을 차단할 경우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 에너지 대란이 올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국영TV 연설에서 “중동발 난민은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나토가 중동 문제에 개입한 결과”라고 비난하면서 “벨라루스가 가스공급을 차단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우회적으로 벨라루스 편을 들었다.

FT는 “벨라루스 정권이 제재를 강화하려는 EU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EU의 지원을 보복하기 위해 난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 모여든 난민은 수천 명에 달한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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