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치유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질병 관련 에세이가 쏟아져 나온 올해 출판계 트렌드를 생각하면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 질병이 알코올 중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젊은 여성의 고백이라면.
신간 에세이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의 저자 박미소(38)씨는 술을 향한 욕망을 '나쁜 사랑', '격정적 사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알코올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는 스스로 알코올 중독임을 인정한 그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쏟은 노력을 담은 책이다. 자신이 술에 빠져 지낸 이유를 되짚는 과정에서 술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문화와 인식에 대한 분석도 덧붙였다.
9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박씨는 "중독을 인지하면서도 인정하기 두려워 머뭇거리는 이들이 치료를 결심하게 될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과감히 알코올 중독 경험을 세상에 공개한 이유를 밝혔다.
박씨는 대학교 진학과 함께 시작한 근 20년의 서울생활 동안 술 한 잔의 위로를 삶의 작은 기쁨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딸아이를 등교시킨 어느 아침, 오전 10시 반이 되기도 전에 홀로 비운 와인 한 병은 스스로 설정한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사건이었다. 정신과를 찾았고, 약물의 도움도 받았다. 글쓰기도 큰 힘이 됐다. 블로그를 열어 '지각 있고 상식적인 알코올 성애자'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한 고백을 모은 게 어느새 책이 돼 나왔다.
"글을 쓰면서 '그 정도가 무슨 알코올 중독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죠."
주당으로 불리며 애주가였던 박씨는 더 나은 육아를 위해 10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무리한 후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졌다. "퇴사 후 바쁘게 지내던 일상이 멈추면서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삶의 큰 굴곡을 만났을 때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크다"며 "알코올에 의존하는 삶은 구멍이 숭숭 뚫린 바닥을 짚고 살아가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중독의 경로를 추적하면서 이를 의지 박약에서만 찾지는 않았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직장 문화, 고도의 스트레스 역시 알코올 의존을 낳는 주요 배경임을 깨달으면서 병의 원인과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4캔에 1만원 하는 편의점 맥주 등 개인의 의지 박약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도처에 술의 유혹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박씨는 이 책의 독자로 20~40대 여성을 염두에 뒀다. 경력 단절 후의 불안과 우울로 술에 의존하면서도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심각해질 때까지 드러내지 못하는 여성 중독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기자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시욕으로 음주에 집착했던 과거 경험도 돌이켜봤다. "누가 차별하지 않아도 신체적 위력에서 남성에게 밀리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많이 마시고 안 취한 척했죠."
박씨는 "원고를 탈고한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지금은 매우 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장바구니가 무겁게 느껴져 맥주를 사지 않았다"며 "주류 할인행사 때문에 멀리 떨어진 지역 대형마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던 과거를 생각하면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술에 취해 방치해 온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요즘은 술을 넘어 스스로를 인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충만한 인정욕구를 채우지 못해 술로 위로받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글을 통한 치유를 경험한 후 작가로서 경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요즘은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죄책감을 느끼면서 즐기는 행동)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중독으로 말문을 텄으니 이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살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죠. 일단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글을 써 보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