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셀프 인테리어 하던 PD, 집 꾸미기 대표 브랜드 만들다

입력
2021.11.10 04:30
14면
윤소연 '아파트멘터리' 공동대표
PD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다시 사업가로 변신
업계 최초로 인테리어 정가표 만들어 고객 급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집 꾸미기(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재택 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테리어 시장은 2010년 19조원에서 지난해 41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해 30조원 규모인 의류 시장을 넘어섰다.

하지만 집을 꾸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업체에 맡기면 많은 돈이 들고, 각종 기자재를 구입해 직접 하자니 고생이 말이 아니다. 전문업체에 맡겨도 비용이 천차만별이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의 거금을 믿고 맡길만한 업체를 찾는 일이다. 그러나 집꾸미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업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왜 집 꾸미기 분야에서는 믿고 맡길만한 대표 브랜드가 없을까.' 신생기업(스타트업) 아파트멘터리를 창업한 윤소연(38) 공동대표는 이런 의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PD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의 창업

윤 대표는 지상파 방송사 PD 출신이다. 그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MBC에 편성PD로 입사했다. "시청자의 취향을 분석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했어요. 당시 분석 결과 토요일 늦은 밤에 마땅한 예능 프로그램이 없어서 여기를 노려보자는 생각에 '세바퀴' 프로그램 편성을 제안해 대박이 났죠."

이후 그는 예능PD로 옮겨 '우리 결혼했어요' '위대한 탄생' 등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지금은 케이블 채널로 옮겼지만 당시 MBC 예능PD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열심히 돈을 모아 2013년 서울 상암동에 33평형 아파트를 샀다.

상암동 신혼집은 윤 대표의 앞날을 바꿔 놓았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내부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취향에 맞게 집을 고치고 싶었죠. 동네 인테리어 전문점은 평당 100만원을 불렀는데 성에 차지 않았고 잡지에 나온 예쁜 사진을 보고 연락한 전문업체는 1억원을 얘기했어요. 당시 돈이 2,000만~3,000만 원 뿐이어서 직접 해보기로 했죠."

막상 도전한 셀프 인테리어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배업자, 타일시공업자 등을 일일이 섭외해 공사를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이토록 고생스러운 과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만들어 기록하고 공개했죠."

집 꾸미기 정보가 없던 시절에 윤 대표가 칼슘두유라는 별명으로 운영한 인테리어 블로그는 예쁘게 바꾼 신혼집 사진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파워 블로거가 된 그에게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왔다.

덩달아 블로그에 올린 집 꾸미기 경험담을 모은 책 '인테리어 원 북'도 22쇄를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만 등 해외에도 번역 출간됐어요."

마침 신혼집을 꾸미던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의 진윤정 상무가 이 책을 보고 사업을 권유했다. "앞으로 관련 시장이 커질 테니 사업을 해보라더군요. 투자설명회(IR)도 모르던 제가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사업 준비를 했어요. 그렇게 소프트뱅크 벤처스에서 직접 IR을 해서 3억 원을 투자 받아 10년 다닌 MBC를 그만두고 2016년에 아파트멘터리를 창업했어요. MBC 편성PD 출신 중에 최초 퇴사자가 됐죠."

인터넷에 창업 소식을 알리자마자 바로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책과 블로그를 본 팬들이었다. "칼슘두유가 퇴사했다며 의뢰가 밀려들었어요. 1호부터 20호 의뢰까지 디자인과 공사 현장 감독을 직접 했어요. 그때 경험이 현재 사업에 고스란히 녹아있죠."

전세계에 없는 유일한 사업 모델을 만들다

아파트 인테리어를 브랜드로 만든 사례는 전세계에서 윤 대표가 처음이다. "인테리어를 디자인부터 시공, 사후관리(AS)까지 모두 책임지고 일괄 공사하는 경우는 해외에도 없어요. 한국은 규격화된 아파트가 많아서 일괄 공사가 가능해요. 그래야 인테리어 혁신을 할 수 있죠."

그는 인테리어 혁신을 위해 4가지 사업 모델을 도입했다. 5년 이상된 아파트의 전체 인테리어를 바꾸는 '파이브', 5년 미만 신축 아파트를 대상으로 일부만 바꾸는 '스위치', 부엌만 개조하는 '키친', 욕실을 변경하는 '배스' 서비스다. "다른 인터넷 집 꾸미기 플랫폼 업체들은 3만개의 인테리어 업체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3만개 업체 중 1등을 목표로 직영 공사를 합니다."

자재 공급은 내부에서 직접하고 키친 서비스의 경우 제품 디자인 개발까지 맡는다. "전체 직원 60명 가운데 자재 개발과 디자인을 전담하는 브랜딩 본부가 있어요. 추가 투자를 받으면 아예 '아파트멘터리 키친'이라는 키친용 자재를 만드는 친환경 공장까지 지을 예정이에요."

비용은 파이브 서비스의 경우 38평형을 기준으로 평당 150만원씩 평균 6,000만 원 정도 든다. 스위치는 평당 100만 원 선이어서 평균 3,000만~4,000만 원 꼴이다. 키친은 평균 1,000만 원 전후로 비용이 형성된다. 결코 싸지 않다. "최저가를 지향하지 않아요. 최저가로 줄 수 있는 가치는 가격 밖에 없어요. 인테리어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서비스에요."


유례없는 정가표와 마감 확인서 도입

윤 대표는 인테리어 업계에서 유례없는 정가표와 견적 계산기를 처음 만들었다. “기준 가격의 정가표를 만들어서 여기에 사양을 더하거나 뺄 경우 가격 변동을 보여줘요. 원가까지 공개하고 여기에 10%를 비용으로 받죠. 그러면 전체 예산을 가늠할 수 있어 고객들이 좋아해요."

이후 스마트폰 소프트웨어(앱)를 통해 공사 진행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의뢰가 들어오면 담당 매니저들이 상담을 하고 실측과 디자인 미팅, 마감 미팅 등을 진행해요. 이 과정에서 앱으로 고객들과 진행 사항에 대해 소통하죠."

여기에 업계 최초로 '마감 확인서'를 도입했다. "공사가 끝나고 고객과 마감 확인서를 작성해요.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는 항목을 천장 도배, 안방 전등 스위치 식으로 적어 놓으면 한 달 내 처리를 하죠."

마감 확인서 도입은 내부에서도 반발이 많았다. 치부를 드러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 대표는 고객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강행했다. "최근에는 마감 확인서 항목이 0인 경우도 있어요. 불만이 없다는 뜻이죠."

획기적인 AS센터도 도입했다. "마감 확인서와 별개로 1년간 AS를 보장해요. 이를 전담하기 위해 GS건설에서 이직해 온 AS센터 팀이 있어요."

덕분에 아파트멘터리는 사회관계형서비스(SNS) 등을 통해 사진과 함께 입소문이 퍼지며 지난해 300여 건 이상 공사를 했다. 지역의 개인 인테리어 업자들이 연간 할 수 있는 최대 공사 건수가 20건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실적이다. "미처 소화를 하지 못할 정도로 의뢰가 몰려 들어 직영 공사업체 중에 공사 건수가 가장 많아요. 전문적인 상담사들을 배치하고 공사 진행 과정을 규격화해 가능한 일이죠. 연 매출 기준으로 100억 원이 넘어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1,000여 건, 매출 300억 원을 예상해요."

AI와 VR도 준비, 3년 내 유니콘 겨냥

아파트멘터리는 연 평균 250%씩 성장하며 투자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소프트뱅크벤처스, 삼성벤처투자, KB인베스트먼트, KTB네트워크 등으로부터 2,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아 누적으로 130억 원을 투자 받았다. 3년 내 기업가치 1조원의 유니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여기 맞춰 올해 말 시리즈C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추가 투자를 받으면 자체 상표의 자재도 만들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을 나와 투자은행 등에서 일한 김준영 공동대표를 지난해 영입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했는데 시공현장에 가서 기술자들에게 커피를 타주며 현장을 배우는 것을 보고 놀랐죠. 너무 잘 맞아 공동대표를 제안했어요."

고객층은 주로 30~50대들이다. 그 중에서도 서울 경기권의 10억 원대 중후반의 30평형 아파트를 보유한 3040 세대를 '미들노트' 세대로 정의하고 주목한다. "이들이 집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아요. 수천 만원을 들여서 취향대로 집을 고치고 싶어하죠. 이들 덕에 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어요."

코로나19 이후 특징은 1인 가구 고객이 늘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전세나 월세 입주자들도 인테리어 의뢰를 많이 해요. SNS와 유튜브 채널등을 운영하는 20대 인플루언서들은 남한테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예쁜 집이 필수라고 생각해요."

5만여건의 고객 상담 데이터를 바탕으로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고객이 원하는 항목을 표시하면 여기 맞춰 AI가 디자인을 뽑아주죠. 내년 봄에 시험판 서비스를 시작할 생각이에요."

가상현실(VR)도 준비중이다. "공사가 끝나면 어떤 모습일지 VR로 미리 보여주는 서비스를 내년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VR 개발업체들을 만나고 있어요."


"예비 창업가들, 먼저 가능성을 시험해 보라"

윤 대표는 아파트멘터리를 "처음이자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할 생각이다. "사업은 엄청 힘들어요. 앞으로 더 힘들겠죠.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오히려 힘들 때 난이도 높은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짜릿해요."

그런 점에서 그는 학창 시절부터 사업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대학생 때 서울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을 운영했는데 아주 잘 됐어요. 매주 1,000만 원씩 이익이 났죠. 그 돈으로 오피스텔 보증금도 내고 해외여행도 다녔어요. PD가 되면서 접었죠."

아파트멘터리 사업이 커진 뒤에도 윤 대표는 시공 현장을 자주 찾는다.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난해 20개 현장에서 일했어요. 그 바람에 고객들이 매니저인줄 알았어요."

경쟁업체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다. 법적 규제라는 진입 장벽 때문이다. "공사비 1,500만 원 이상의 인테리어를 하려면 실내건축업 등록을 해야 돼요. 자본금 2억 원 이상, 실내건축기사와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상주 인력이 있는 업체만 등록이 가능하죠. 실내건축업 면허없이 1,500만 원 이상의 공사를 진행하면 불법이에요. 우리는 매니저 중에 실내건축기사와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윤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시험해보라'는 조언을 했다. "무엇이든 시험 삼아 소비자가 돼서 먼저 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모든 것을 걸면 잃을게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 소비자가 돼보지 않은 일은 창업하지 않는 것이 좋죠. 옷을 대충 입으면서 패션 사업을 하면 망하죠. 저에게는 사업 전 시험 과정이 블로그 운영과 책 출간이었어요. 남편이 책이 완판되면 퇴사하라고 조언했어요. 그것으로 시장 가능성을 가늠해 봤죠. 소비해 본 경험이 있는 일에서 시험 삼아 해보고 나중에 사업을 벌여도 늦지 않아요."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