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마약'으로 불리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허위로 처방받아 사용하고 유통시킨 일당 수십 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대전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구속하고, 2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에게 진단서와 처방 이력을 확인하지 않고 처방전을 내준 혐의로 의사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2018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대전에서 1,250차례에 걸쳐 펜타닐 패치 1만여 장을 처방받아 직접 사용하거나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펜타닐 패치는 모르핀 등 아편 계열의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의사 처방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펜타닐 패치는 장기간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피부에 부착해 사용하는데, A씨 등은 한꺼번에 3, 4장까지 붙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중독성이 헤로인의 1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펜타닐의 오용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암·디스크 환자 등을 위해 일반 병원에서도 처방해주는 의약품이라는 점을 악용해 허위 처방을 받아 마약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펜타닐 패치가 오용되는 주된 이유는 병·의원에서 꼼꼼한 확인 절차 없이 처방을 내주기 때문이다. 의사가 펜타닐을 처방할 경우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을 확인해 환자의 최근 1년간 마약류 투약 이력을 조회하는 등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실제 이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환자가 '몇 년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아 고통이 심하다'고 거짓말을 해도 과거 수술 기록이나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고 신분증만 확인한 뒤 패치를 처방해주는 관행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 조사 결과 A씨 등은 "수술을 받아 몸이 많이 아프다"는 이유 등을 들며 의사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일부 피의자들은 한 번에 펜타닐 패치를 많이 구입하기 위해 다른 사람 신분을 도용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펜타닐 패치를 처방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펜타닐 패치를 1장에 1만5,000원에 구입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100만 원에 판매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에선 펜타닐 등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과량복용 사망 사고가 늘자 이 약물을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추세다. 특히 미국에선 '오피오이드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오남용이 심각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추산 결과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 오남용 사망자는 1999년 8,048명에서 2019년 4만9,860명으로 6배 이상 늘었다.
마약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미국 등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초기에 강력한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국도 펜타닐 패치 관련 위험성을 인식하고 최근 처방 및 사용을 규제할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지만, 의료기관 자율규제 사항이라는 이유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대응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