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퉁샹(桐鄉)까지 고속열차로 40분, 다시 북쪽으로 30km 이동한다. 중국국민이 다 아는 수향인 우전(烏鎮)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우전이 바쁘다. 세계인터넷포럼(World Internet Conference)이 열리기 때문이다. 글로벌 CEO가 많이 참가한다. 매번 시진핑 주석이 치사를 한다. 저장성 서기이던 2005년 8월에도 방문했다. 성도인 항저우와는 1시간 30분 거리다. 우전은 서책(西柵)과 동책(東柵)으로 나뉜다. 포럼이 열리는 서책이 훨씬 크고 예쁘다. 동책은 별로 다듬지 않아 그냥 평범하다. 서책이 화려하다면 동책은 소박하다.
서책 입구에 조각상이 있다. 화합이선(和合二仙)이다. 연꽃과 그릇을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이다. 연꽃의 하(荷)는 화(和)와, 그릇의 합(盒)은 합(合)과 발음이 같다. 연꽃은 고결한 심성을 비유한다. 그릇에 박쥐가 날아오를 듯 푸드덕거리고 있다. 복이 넘치라는 뜻을 담았다. 민간 전설에 등장한다. 짧게 요약해본다.
세 아이가 함께 살았다. 모두 피가 섞이지 않았다. 여자 아이 엄마가 유언으로 누구든 배필로 삼아 평생 돌봐달라고 했다. 여동생을 아낀 형과 동생이 서로 양보했다. 형이 출가해 승려가 됐다. 동생도 형을 찾으러 갔다가 승려가 됐다. 옥황대제가 감읍해 둘은 신선이 됐다. 홀로 남은 여동생은 평생 시집을 가지 않았다. 복숭아가 익으면 그릇에 담아 대제와 왕모에게 축수를 빌었다. 우전을 방문하는 여행객에게 신선의 마음으로 대접하겠으니 행복하게 즐기라는 뜻으로 세웠다.
입장권을 사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증명사진을 찍는다. 얼굴 인식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최근에 관광지마다 첨단 시스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식도 아주 금방 끝난다. 완벽하게 통제돼 있다. 사건 사고에 연루되면 ‘꼼짝 마라’다. 나름 안전한 여행을 보장하지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수향은 출입구가 많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갈 때는 편하다. 동책에 진입할 때도 얼굴만으로 가능하다.
미리 예약한 퉁안객잔(通安客棧)까지 전동차로 이동한다. 5분이면 도착한다. 객실이 350개나 되는 5성급 호텔 수준으로 초입에 위치해 아주 편리하다. 성수기나 주말엔 방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
객잔 바로 앞 통안교(通安橋)에 오르니 잔잔한 도랑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날씨가 맑아 시선을 어디에 둬도 기분이 좋다. 도랑 양쪽은 1㎞가 조금 넘는 긴 골목이다. 사방으로 도랑이 연결돼 있어 서로 방향이 다른 돌다리도 많다.
객잔을 나서자 바깥 공터에 대나무로 삿갓처럼 만든 덮개가 잔뜩 있다. 서창장원(叙昌醬園)이다. 청나라 함풍제 시대인 1859년에 도서창(陶叙昌)이 세운 간장 공방이다. 전통 방식으로 발효한 진국으로 지금도 소문이 자자하다. 비가 오면 대나무로 짠 삿갓 모자로 장독을 덮는다. 까맣게 칠해 햇볕 가림막 역할도 한다.
도랑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한 바퀴 돌아오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고 공예품 가게를 구경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유유자적 걸어간다. 몇 걸음 가니 천하제일과(天下第一鍋)가 보인다. 주방 솥 치고는 너무 크다. 명나라 가정제 시대 철을 다루는 장인인 심씨가 역창야방(亦昌冶坊)을 열었다. 청나라 동치제 시대 1866년에 드디어 솥을 조공할 만큼 솜씨가 돋보였다. 조공 100주년을 기념해 당시 솥을 제작했다. 무게는 3.15톤이고 지름은 3m다. 매년 엄동설한이 되면 3일 동안 솥으로 죽을 만들어 가난한 서민에게 제공했다. 크기에 어울리는 선행을 베푼 보제천하인(普濟天下人)이란 명성도 얻었다.
나무계단이 도랑을 지나간다. 도랑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어 호반이 생겼고 수상집시(水上集市)가 열린다. 새벽이면 채소나 고기를 싣고 배가 몰려와 시장을 열던 곳이다. 우전은 물산이 풍부해 어미지향(魚米之鄉)이자 사주지부(絲綢之府)라 불린다.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침수인가(枕水人家)라는 별명도 있다. 그야말로 물의 세상이다.
비가 살짝 내린 후라 어린아이 볼처럼 촉촉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물 위에 무대도 만들었다. 분장한 배우가 전통악기 반주에 맞춰 몸짓을 부리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풍요롭던 시절에는 24절기마다 민속 문화 활동이 진행됐다. 지금도 명절이 되면 공연과 시장이 어우러진다고 한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을 테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된다.
넝쿨이 우거진 담장이 나온다. 비가 살짝 내리기 시작해 나뭇가지에 물방울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쿵링징(孔另境) 고거이자 기념관이다. 20세기 유명 작가이자 평론가인 마오둔의 손아래 처남이다. 공자의 76세 후손으로 태어나 공산당원이 됐다. 마오둔과 루쉰을 흠모했으며 가업을 잇는 대신 신사상을 받아들이고 혁명에 투신한 인물이다. 해방 후 상하이 출판계에서 활동했고, 사인방의 핍박을 받아 문화혁명 때 사망했다.
길 옆에 작은 사당 하나가 낯설다. 온도원사(瘟都元帥) 팻말이 걸렸다. 안에 우물이 하나 있고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벽면에 전설이 적혀 있다.
1300년 전 지방 과거를 통과해 수재가 된 장씨가 있었다. 심성이 선량하고 청빈한 선비였다. 우물 옆에 살던 장씨는 책을 읽다가 밤중에 인기척을 느꼈다. 염병(장티푸스) 귀신 둘이 우물에 전염을 일으키는 독을 뿌리고 달아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물을 마시면 병에 걸리니 먹지 말라고 붓글씨를 써서 붙였다. 사려 깊은 선비는 일자무식인 사람을 배려해 신발을 벗어 우물에 던져놓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 우물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장씨였다. 몸을 바쳐 주민의 목숨을 살렸다. 옥황대제가 감동해 봉신(封神)했고 주민은 사당을 세웠다. 지금도 기일인 음력 5월 16일에 제사를 지낸다.
시야가 넓어지더니 평탄하게 생긴 천선교(遷善橋)가 나타난다. 두 도랑이 하나로 합해지니 수량도 많고 폭도 넓다. 배가 다니는 통로가 4개인 교각이다. 바닥에 주춧돌을 쌓고 돌기둥을 박았다. 높이가 약 4m 정도인 돌기둥 4개가 하나로 묶여 상판을 지탱하고 있다. 고개를 숙여보니 양쪽 끝 기둥에 대련이 새겨져 있다. 제대로 읽기가 힘들다. 반대쪽에도 두 개의 기둥에 글자를 새겼다. 수향의 수많은 다리를 봤지만 교련(橋聯)이 있는 다리는 처음 봤다.
천선교 위에 서니 수향이 한눈에 보인다. 탁 트인 시선이 시원하다. 다리를 지나 다가오는 오봉선이 장난감처럼 귀엽다. 도랑 양쪽으로 분을 바른 담장과 검은 기와가 줄줄이 이어진다. 우전의 지붕 담장은 동그란 귀마개처럼 생겼다. 도드라지게 봉긋해 방긋 웃는 아이들이 연상된다. 걸터앉기 좋은 다리 난간이다. 우전에 올 때마다 한참 앉아 수향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담아 새겨둔다.
여행객을 태우고 도랑을 오가는 오봉선이 많다. 수향의 별미니 누구나 유람하고 싶어한다. 부두를 찾으면 된다. 나뭇잎이나 쓰레기가 쌓이는 도랑이 늘 청결하게 유지된다. 청소하는 배도 자주 보인다. 도랑은 하늘의 영향을 받는다. 매번 갈 때마다 물빛이 달리 보이는 까닭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여러 가지 빛깔로 변한다. 도랑을 교통로로 식당에 물품을 실어주는 배도 있다. 상자를 내려놓고 다시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한다.
이리저리 돌다리를 건너 도랑 끝으로 간다. 비가 살짝 내리는 날에는 진한 커피 향이 생각난다. 쉬어가면 좋겠다 생각할 때 딱 나타나는 카페가 있다. 수향다운 이름의 위궈톈칭(雨過天青)이다. ‘비 온 뒤 하늘이 푸른’ 감상에 젖는다.
사실 비와 하늘은 감수성을 꽤 자극한다.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던 북송의 휘종도 그랬다. 비가 개인 다음 구름 사이로 나타난 하늘의 색깔을 담아 서학도(瑞鶴圖)를 그렸다. 랴오닝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이다. 그림을 보면 황제가 본 하늘이 놀라울 정도로 청아하다. 파랗고 푸른 하늘과 사뭇 다르다. 이 하늘색을 담아 만든 도자기가 여요청자(汝窯青瓷)다. 도자기에 조예가 있으면 알 수도 있다. 야외에 자리가 있어 도랑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본다.
우전 서책을 절반 둘러보고 반대쪽 길을 따라 되돌아간다. 비단으로 유명한 수향이다. 남색 원단에 꽃문양이 염색된 남인화포(藍印花布)는 수향만의 품격이다. 새빨갛고 샛노란 원단도 있다. 햇볕에 말리는 쇄장(曬場)이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원단도 높이 걸었다. 바람에 휘날리지 않도록 원단 아랫부분을 나무에 묶으니 오히려 가냘프게 흔들리는 모양새다. 원단을 끌어안거나 두 손 벌려 하늘을 향해 기분 좋은 동작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우전을 테마로 만든 상품 가게가 있다. 벽돌 위에 그린 수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까마귀 오(烏)를 이름으로 쓴 수향이다. 오봉선이 떠다닌다고 정한 이름도 아니다. 수향의 밝은 기운에 검은색이 어울리지 않으니 숨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당나라 시대에 저장자사인 이기가 반란을 일으켰다. 오찬(烏贊) 장군이 반란군을 토벌했다. 항복 후 다시 배반한 반란군 수괴를 쫓아 다리를 넘다가 함정에 빠졌다. 애마인 청룡구와 함께 전사했다. 우전에 돈대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서쪽을 오돈(烏墩), 동쪽을 청돈(青墩)이라 불렀다. 나중에 합쳐져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오찬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우전 야경은 대체로 황금색에 가깝다. 비슷하게 조명을 써서 그런지 현란하지 않고 품위가 있다. 밤이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수상집시까지 나간다. 밤에도 배가 지나다닌다. 물살을 헤치고 가니 반영도 스르르 흔들린다. 아치형 다리에도 조명을 뿌리니 두 개의 원이 만날 듯하다. 객잔으로 돌아가 잠자리로 들어간다. 푹신한 침대 위로 온몸을 던진다. 물을 베개로 삼는 수향이니 잔잔한 도랑에 눕는 듯하다.
눈을 뜨고 동책으로 이동한다. 차로 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얼굴 인식으로 남문을 통과한다. 부두가 있어 도랑 따라 서문까지 오봉선이 왕복한다. 거리는 한산하고 돌다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양쪽에 벽돌을 쌓아 사각형 구멍을 만든 영안교(永安橋)를 지난다. 도랑 건너에 단칸방 크기의 관음당이 보이고 옆집 베란다에 갖가지 화분이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인수교(仁壽橋)에 오르니 부두를 떠난 오봉선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오둔고거(茅盾故居)가 있다. 1896년에 태어난 마오둔의 본명은 션더훙(沈德鴻)이며 자는 안빙(雁冰)이다. 서책에 있는 쿵링징의 누나 쿵더즈(孔德沚)와 결혼한 마오둔은 신중국 정부 최초의 문화부장(장관)을 역임했다.
거실 조각상에 문학거장(文學巨匠) 칭호가 당당하다. 유지경성(有志竟成) 편액이 걸렸다.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뜻으로 동한을 개국한 광무제가 악천고투 끝에 적을 섬멸한 경엄 장군을 칭찬한 말이다. ‘후한서’ 기록을 참고해 청나라 말기 저장순무를 역임한 양창춘이 썼다.
사인방의 핍박을 겪고 1981년 지병으로 사망한다. 유훈에 따라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마오둔문학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2011년에 화교권 최고 갑부인 홍콩 사업가 리자청(李嘉誠)이 거금을 기부했다. 상금이 50만 위안(약 8,500백만 원)으로 10배나 올랐다. 거부가 문학에 대한 감성을 표현하는 길은 기부가 최고다. 부러울 따름이다. 거부도 거부 나름이다. 보통 4~5년 주기로 수상작이 선정되며 최고의 작품이 망라된다. 소설은 이야기로 공감하는 대중문화예술의 기반이다. 마오둔이 살아온 삶이 훌륭한 문학상을 남겼다.
1m 안팎의 골목 양쪽에 가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랑으로 연결된 골목도 있다. 대부분 대문에 뜻밖의 물건이 걸렸다. 잎사귀 붙은 나뭇가지를 거꾸로 꽂았다. 쑥잎(艾葉)이다. 남방 지방에 단오가 되면 액막이를 위해 걸어둔다.
덥고 습한 계절이 시작되면 병이 많아지고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절의 풍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복(福)과 나란히 있다. 쑥과 함께 마늘을 걸어두는 집도 있다. 초록으로 싱그럽던 쑥잎이 드라이플라워처럼 변해가고 있다. 다른 지방에 비해 동책에 유난히 많다. 서책에도 전염병을 막은 신명이 있는데 우전이 참 유별나다.
강남목조관(江南木雕館)으로 들어간다. 저택 전부가 예술품이지만 기문조화(騎門雕花) 대들보는 정말 예술이다. 4.1m 크기의 대들보 양끝에 구름이 휘감는 문양도 화려하지만 한가운데 전가복(全家福)은 일품이다. 안녹산의 반란에 공을 세운 곽자의의 칠자팔서도(七子八婿圖)가 원형이다. 7명의 아들과 8명의 사위가 축수를 하는 장면으로 다복한 가족을 상징한다. 예의 바르고 절도 있는 자세까지 아주 세밀하다.
미륵불 목조도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얼핏 보면 석조처럼 보이는데 은행나무로 만들었다. 열두 미륵이 나무 곳곳에 각양각색으로 자리 잡았다. 통째로 조각해 금박을 입힌 후 물감을 칠했다. 배불뚝이 모습, 표정은 해학이 넘치고 율동도 담았다. 한가운데 있는 미륵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배를 한껏 내밀고 있다. 볼수록 정겹고 기품이 있다. 이 목조 두 작품만 봐도 동책에 온 보람이 있다. 들보와 천정, 벽마다 화려하게 꾸민 목조 전시관이다.
우전하면 떠오르는 바이주(白酒)가 있다. 싼바이주(三白酒)를 제조하는 주정이 있다. 백미(白米), 백수(白水), 백면(白麵)을 원료로 한다는 브랜드다. 재래식으로 술을 만드는 장면을 보려면 한번 찾아갈 만하다. 술 창고에 이르니 향기가 진동을 한다. 냄새만 맡아도 취기가 오른다. 현장에서 아주 저렴하게 판매도 한다.
수향 바깥으로 연결된 물길에 다리가 세워져 있다. 비를 막을 수 있는 지붕도 씌워져 있다. 봉원쌍교(逢源雙橋)라 부른다. 가까이 가면 왜 쌍교인지 알 수 있다. 다리가 겹쳐서 하나 더 있다. 가운데 칸막이를 두고 안쪽 다리를 건너면 승진한다는 셩관(升官)이다. 뒤쪽 다리는 돈을 번다는 파차이(發財)다. 소원에 맞게 선택해 다리를 건너라는 이야기다. 둘 다 원하면 왕복하면 된다. 아무도 막지 않는다.
동책 남문에 물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조각상이 있다. 서책 입구의 두 신선과 대조를 이룬다. 우전 서책과 동책 모두 보면 일석이조다. 수향의 미래를 보려면 서책, 과거를 보려면 동책이 어울린다.
오봉선 타고 유람하면 서책과 동책 모두 감성이 마중물처럼 솟는다. 서책은 아기자기하고 진한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분위기다. 동책은 문학을 이야기하며 조용히 술 한잔하면 취기가 솟아오르는 분위기다. 여행객은 입맛에 따라 저마다 느끼는 감동이 다를 듯하다. 서책이나 동책 어디라도 누구에게나 추억을 쌓기 좋은 수향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