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다루는 나토 사무총장이 COP26 참석한 까닭은

입력
2021.11.03 17:30
기후정상회의 첫 참가... 이목 집중
"안보와 기후는 동전의 양면" 주장

“나는 안보와 기후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는 안보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도 중요한 사안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각국 정상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에 세계 최대 안보동맹 수장이 모습을 드러낸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뼈만 남은 북극곰이 녹아 내린 빙하 위를 서성이거나, 일부 섬나라가 점점 가라앉는 현상으로 대표되는 기후변화가 이제는 ‘국지적 위협’ 차원을 넘어, 각국 안보마저 뒤흔드는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날 COP26 원탁회의에서 “기후변화는 (안보) 위기의 가중 요인”이라며 “물, 영토 같은 희소 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증가시키고 수백만 명을 떠돌게 해 세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식량 생산 감소, 국가 간 분쟁 또는 내전, 난민 급증 등 국제 안보 환경을 위협하는 변수들이 기후변화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이번 회의가 지구촌이 직면한 기후 재앙 해법을 찾기 위한 자리인 만큼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다. 기후 위기가 국제 안보를 악화시킨다는 관측도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도 “기후변화는 미국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만 스톨텐베르그 총장의 이날 발언은 유독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30여개국 정상이 참석한 COP26에서, 안보를 최우선시하는 군사동맹 수장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나토는 미국과 유럽 등 30개국이 회원국인 다자기구다.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맞서 서구 동맹을 결집시키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결국 그의 언급은 나토가 군사와 영토분쟁 등 전통적 안보 범주 외에, 기후 위기도 핵심 과제로 삼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나토 사무총장이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건 사상 처음이다. WP는 “전 세계 군대가 그동안 ‘국가 안보’와 ‘환경 보호’가 모순되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유엔 기후회의에 국방 최고 관계자들이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가 군 조직과도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라고 봤다. 예컨대 당장 올해 지구촌 전역을 강타한 이상기후로 이라크 주둔군은 ‘섭씨 50도의 폭염’이라는 또 하나의 적과 싸워야 했다. 각 나라 해군은 홍수나 해수면 상승 위협에도 직면해 있다. 환경 문제가 군사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건 이제 엄연한 현실이 됐다는 얘기다.

또, 군대가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문제도 그간 국제 기후 협상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WP는 “군에 있는 모든 전투기, 탱크, 프리깃함(소형 구축함)이 온실가스를 내뿜는다”고 전했다. 2019년에는 “미군을 ‘하나의 나라’로 간주할 경우, 세계 47위의 온실가스 배출 국가가 된다”는 내용의 연구 보고서도 나온 상태다.

그러나 군대 내 온실가스 총량을 추적하는 일은 난제로 꼽힌다. 일단 군사시설의 ‘탄소 발자국(배출 흔적)’은 공개되지 않는다. 적군이 군사력을 캐낼 수 있어 기밀로 여겨지는 탓이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군대 내) 배기가스는 통계에서 사라졌지만 대기 중에서 사라지진 않았다”며 “녹색 군대와 강한 군대 중 하나를 선택해선 안 된다. 이젠 강하면서도 친환경적인 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