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복에 왜 이리 엄격한지 모르겠음. 한복 활성화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게 한복이냐면서 맨날 화내기만 하면... 도대체 언제 활성화가 돼요?"라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서울 종로구가 인사동 홍보관에 도입한 한복 근무복을 두고 '이걸 한복이라고 하면 억지'라는 비판을 반박하는 글이었다.
누리꾼들은 "옷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왜 자꾸 한복을 옛 시대 전통으로만 두려고 하냐", "조선 전기, 후기 복식 차이만 봐도 엄청난데 왜 그렇게 '본인이 아는 한복'에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본인들도 전통한복 안 입으면서 한복 살려보겠다고 개량하면 한복 아니다, 중국풍 일본풍이다 훈수만 둔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튜브 채널 '케이 스타일(K-Style) 크리에이터 루이즈 Louise' 운영자 루이즈(본명 김예림·24)씨를 지난달 15일 만났다. 그는 대중이 더 이상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롭고 다양한 한복을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생활한복을 입으며 받아 온 차가운 시선과 낯선 반응이 갈수록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한복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를 '전통문화 N잡러(직업이 여러 개인 사람)'라 소개한다. 루이즈씨는 생활한복 유튜버로 시작해 지금은 다양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전통 장신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 학교에서도 한복을 입고 다니면 부정적 반응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학교에서 한복을 입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어요. 2016년 문화재청 산하 특수목적대학교인 한국전통문화대를 입학했습니다. 전통문화를 공부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한복을 입는 사람은 없거든요. 저도 항상 한복을 입고 싶었지만 망설여졌어요. 그러다 축제 기간에 선배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허리치마를 사서 입어보니까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장학금과 용돈을 아껴 한복을 구매하기 시작했죠. 학교 문화가 보수적이기도 하고 학생들 모두 기숙사에서 공부만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까 제가 더 튀어 보였던 것 같아요.
동기 중에서도 저 빼고 대부분 대학원을 가거나, 논문을 쓰고, 연구자가 됐거든요. 저만 이렇게 바깥 활동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유난 떤다', '쟤는 왜 저렇게 나대냐' 는 말이 많이 들렸습니다. 교수님들도 처음엔 '어디서 이런 별종이 들어왔나' 하는 반응이셨던 것 같고요.
반면 동기들은 네가 생각하는 전통을 직접 표현하는 게 좋다고 응원을 많이 해줘서 힘이 됐죠. 교수님들도 제가 이일(한복과 전통문화 관련 영상 제작)을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시고, 나중에는 이해해 주시고 더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진심이며,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강의를 빠지고 콘텐츠 촬영하러 가야하는 상황에도 흔쾌히 허락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무척 감사했죠."
- 한복 유튜브 채널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복을 처음 입고 난 후 2017년쯤에는 제 옷의 70～80%가 한복이었습니다. 정말 일상복처럼 입었어요. 처음엔 제 한복에 부정적이었던 학교 사람들도 익숙해지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상복으로서의 한복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생활한복이 대중화되지 않았는데, 대중도 많이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대학생으로서 전통문화와 한복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을 고민하다 영상으로 한복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영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편집도 공부해 가며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외주나 협업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전통문화 브랜드의 제품 개발에도 참여하고, 한복 관련 행사 촬영, 제품 스토리텔링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죠. 그때 경험들이 제 브랜드를 만드는 창업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저는 전통문화를 공부하고, 사람들한테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게 너무 즐겁거든요. 애정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길거리, 대중교통, 가게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떤 느낌의 한복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반응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딱 보자마자 '한복 입었네'라고 알아차리는 것보다는 뒤늦게 자세히 보니까 '어, 한복이었네' 하며 뒤늦게 알아차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에 한복을 조화롭게 입으려 합니다. 그래서 크롭티처럼 짧은 웃옷 스타일을 좋아해서 가끔 저고리를 짧게 하거나, 배가 보이게 하거나, 풀어 헤쳐서 입거든요. 그러면 좋지 않은 반응이 있기도 해요.
어느날엔 지하철에서 한 할머니가 제 가슴을 막 찌르시면서 "이런 걸 왜 이렇게 입은 거냐"라며 언짢아하셨어요. 불과 2, 3년 전에만 해도 그랬어요.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손가락질당하는 건 하루에 두세 번은 꼭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대놓고 안 하는데 뒤에서 저를 쳐다보며 욕을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런 경우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기분이 안 좋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입고 싶어서 입은 건데 어쩌라는 거야'라고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계속 저를 쳐다보면 열심히 째려보고(웃음). 옷을 왜 그렇게 입었느냐고 해도 '그냥 제가 이렇게 입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고 말죠. 제가 설명해도 금방 설득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요. 근데 요즘엔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처럼 대놓고 나쁘게 보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기성세대 중에는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불편하게 쳐다보는 분들도 많지 않고, 속삭이듯 예쁘거나 곱다고 말하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최근엔 한 어르신이 며느리 삼고 싶다고도 하셨어요. 카페나 식당에서 너무 예쁘다고 가끔 맛있는 음식을 서비스로 주는 분들도 계세요.
-대중이 한복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뀐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일 큰 이유는 케이팝(K-POP)이라고 봅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복을 보는 인식이 바뀌고 있죠. 아이돌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무대 의상 중 하나로 한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힙'하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고리타분한 옛날 것이 아니라 아이돌이 입는 멋있는 옷이라고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방탄소년단(BTS)나 블랙핑크 같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끄는 아이돌이 한복을 입기 시작하며 글로벌 이슈가 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MZ세대가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생활한복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한복을 열심히 알려 온 저로선 뿌듯하고 반가운 일이죠."
루이즈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2019년 '내가 생활한복을 입고 싶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영상에서 2년 동안 생활한복을 입으며 느낀 생활한복의 실용성 문제와 틀에 박힌 듯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지적했다. 루이즈씨는 "다들 비슷한 생활한복을 만들던 과도기였다"며 "나 또한 발전이 없고, 오히려 퇴보하는 듯한 생활한복 업계에 지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가족에게 수년 동안 함께하며 쌓여온 불만과 서운함이 폭발한 것에 비유했다. "큰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계속 불만이 쌓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제 옷장을 열었는데 정말 화려한 꽃무늬 한복밖에 없더라고요. 그때 뭔가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것 같아요."
하나의 브랜드에서 만든 한복이 인기를 얻으면, 다른 브랜드들도 비슷한 형태와 무늬의 한복을 따라 만들었다. 그는 당시 생활한복 업계를 "예쁜 원단 찾기 대회"라고 표현했다. 한복의 형태나 재질 등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거나 브랜드 자체의 가치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보다, 좋은거 따라하기 급급해 발전이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또한 "생활한복을 '옷'으로 생각하지 않고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옷이 갖는 다양한 쓰임새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실용성 문제를 지적했다.
①피부에 닿는 옷의 재질로는 적합하지 않는 커튼 원단으로 만든다거나 ②입으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구김이나 활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③세탁이 불가능해 드라이만 맡겨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는 "맞춤 제작도 아닌데 수공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환 환불을 거부하고, 옷태나 바느질 문제 지적도 무시하는 브랜드도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영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한복 소비자의 한 사람이면서 한복을 포함한 전통문화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터놓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낸 것. 한 생활한복 디자이너로부터 '덕분에 문제점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는 감사 메시지를 받고 뿌듯했다고 했다.
루이즈씨는 최근 다양한 디자인과 재질의 한복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여러 한복 브랜드들이 저고리의 길이를 짧거나 길게 만들거나, 걸칠 수 있는 두루마기, 성별 구분 없는 펑퍼짐한 한복 등 새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하는 모습이 반갑다고 했다. 한복을 분해해 깃, 고름, 동정 등을 차용하는 등 전통 가치들과 요소, 문양을 기성복에 새롭게 접목하는 시도를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루이즈씨는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생활한복 초심자들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을 소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생활한복 브랜드를 정해 여러 옷들을 소개하거나, 계절에 따라 한복을 선보이는 영상이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각자의 취향이나 다른 상황에 맞게 입을 수 있도록 한복의 다양성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 한복부터 직장에서 입을 수 있는 오피스룩, 여성스러운 취향에 맞는 한복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한복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옷'임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내가 생활하는 곳이 어디냐, 어떤 옷을 즐겨 입느냐에 따라서 생활한복도 변화무쌍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아직까지 대중이 다양한 한복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저는 스스로 한복과 대중의 연결고리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한복이 단순히 우리 전통옷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 등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대중이 전통문화를 더 가깝고 친숙하게 느끼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무형유산학과를 전공하며 배운 지식과 시각이 큰 도움이 됐어요. 문화재의 단순히 보이는 형태뿐 아니라 담긴 이야기를 발굴하는 관점을 배웠거든요"라고 말했다. 구독자들도 겉모습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 담긴 얘기를 알게 되어 좋다거나 높은 수준에 놀라곤 한다.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콘텐츠에도 이야기와 의미를 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조선팔도미인도에 있는 미인의 여덟 모습을 똑같이 재현하는 조선팔도미인도 룩북(본래는 패션 관련 제품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자, 최근 영상으로 많이 제작되는 추세)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단지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당시 기생들의 삶, 내면을 중요하게 여긴 당시의 미인상 기준, 여성들의 이야기를 같이 담았다"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더 알게 되고, 가깝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루이즈씨에게 한복이란 멈춰 있는 과거의 것이 아닌 계속 변화하는 현재의 문화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 후기의 고전한복만이 한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루이즈씨는 "한복이라는 한자 그대로 한국인이 입는 옷이라고 생각한다"며 "특정 시대의 양식만이 아닌, 한국인의 생활습관과 정체성, 얼이 담긴 옷이 한복"이라고 강조했다.
"한복 디자이너께서 저와 비슷한 내용으로 인터뷰하신 걸 봤는데, 악플이 엄청 달렸더라고요. 아직 한복이 멈춰 있는, 고정된 개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한복은 고전한복에만 한정돼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조선 후기 한복."
루이즈씨는 명료하지 않은 정부의 한복 기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복을 제대로 입자고 말하지만 정작 한복의 기준과, 정확한 형식을 정부 관계자조차 잘 모르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관공서나 정부의 정책, 공모전, 축제 등에서 전통한복만을 한복으로 한정해 다양한 신한복들이 배제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루이즈씨는 "한복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포용해줘야 우리나라에서 한복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루이즈씨는 자신에게 한복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문화를 공부하며 전통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 자신에게 왔다는 사실이 가장 감명 깊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어진 우리의 긴 세월 속에 지금의 내가 있고, 또 나도 이 전통을 이어갈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저도 누군가에게 전통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겠죠? 전통문화계에서 옳은 방향을 제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저의 최대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