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17기로 5공화국 실세였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은 29일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해 "내가 반란 책임자인가, 내가 사과할 입장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이사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뒤 기자들과 만나 "내게 아무리 말해도 답할 게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허 이사장은 하나회 멤버로 12·12 당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다. 전두환 정부 청와대에선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을 맡는 등 전두환 정권 2인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허 이사장은 이날 빈소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국민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그는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이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을 통해 5·18광주민주화운동 유족들에게 사과한 점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그 부분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고인을 위해서도 덕담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허 이사장은 '5·18 유족에게 사과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고인을 편안하게 모시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양해해달라"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게 이야기해봤자 대답할 게 없다"고 답했다.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씨가 27일 빈소를 찾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이제라도 광주 학살에 대해 사죄 표명을 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내가 제5공화국과 관련 있는 사람은 맞지만, 내가 본인(전 전 대통령)이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 시절 노 전 대통령과 광주 학살에 직접 지시 및 관여하지 않았냐" "사과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질의가 잇따르자, 허 이사장은 "할 얘기가 뭐가 있겠나. 단시간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다 하기 어렵다. 사과할 입장이 아니니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답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는 장례 사흘째인 이날도 각계각층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김홍걸 의원, 강창희 전 국회의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과 미국, 영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 각국 대사(대리)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흘째 내리 빈소를 지켰다. 김 전 위원장은 "내가 모시던 분이니까 떠나실 때까지 매일 인사하러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전날 빈소를 3호실에서 조금 더 넓은 2호실로 바꿨는데, 이날은 1호실로 또다시 옮겼다. 1호실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장 넓은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당초 1호실 사용을 원했으나, 이용자가 있어 부득이하게 이날 오전 1호실로 옮겼다.
행정안전부가 이날 공개한 국가장 영결식 기본 계획에 따르면 30일 오전 9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을 마친 뒤 고인이 별세 직전까지 머물렀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공원에서 영결식이 진행된다. 고인의 유해는 서초구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거쳐 경기 파주시 소재 사찰인 검단사에 임시 안치될 예정이다.
경찰은 영결식 당일 운구행렬 이동 구간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연희동-올림픽공원-서울추모공원-자유로를 순차적으로 교통통제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운구행렬이 40㎞ 내외로 운행하고, 이동 구간이 부분 통제돼 혼잡이 예상된다"며 "이동구간 내 차량 운행을 자제하고 부득이 차량 이용 시 통제구간을 살펴 사전에 원거리로 우회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