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장례식장에는 여야 정치인과 각계 원로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인이 현대사의 고비마다 어둠과 빛을 함께 남긴 인물인 만큼, 빈소를 찾은 인사들의 표정은 더없이 복잡했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한 '6공화국' 동지들이 가장 먼저 장례식장을 찾았다. 노태우 정권에서 경제수석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빈소가 열리자마자 조문했다. 그는 "고인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외교에 대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분"이라며 "북방정책을 표명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하셨다"고 기렸다. 노 전 대통령의 과오는 언급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의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의원과 노재봉 전 국무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해창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이른 아침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고인이 소뇌 위축증으로 20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한 만큼, 모두 담담한 모습으로 고인을 떠나보냈다. 박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생전 인연을 돌아보며 "참모의 한 사람으로서 편안히 잠드시길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보수 야권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잘못은 분명하지만, 가족이 '대리 사과'한 노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데 이들은 무게를 실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고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와는 다르게 추징금을 납부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해서도 가족을 통해 사과했다"며 "고인의 과를 오롯이 덮고 갈 수 없지만, 사과 노력은 다르게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과(過)보다 공(功)을 말하는 데 초점을 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인의 과오는) 장례식장에서 얘기를 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홍준표 의원은 "고인이 재임 중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한국 사회의 조직폭력배를 전부 소탕한 업적이 있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과가 있지만 자제분들이 여러차례 사과한 것을 국민들이 평가할 것"이라 했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국민 앞에 겸허한 진정성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중 홍 의원만 방명록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당선된 첫 번째 민선 대통령으로서 소련의 붕괴, 독일의 통일 등 혼란스러운 국제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처를 잘 하셨다"고 평했다.
여권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지만, 애도 메시지엔 온도차가 분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노 전 대통령 아들 재헌씨와 악수하며 위로를 전했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을 평가한다. 가시는 길이니까 (조문 와서) 같이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는 빈소에 마련된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진 않았다. 그는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한다"면서 "(조문을 한 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한 것"이라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고인께서 살아 생전에 광주를 방문해 (5·18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행동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과오는 과오이지만 생애를 두고 사과하고 특히 5·18 유족께 용서를 빈 건 그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정의당은 조문하지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건 역사의 무게와 오월의 상처를 망각한 것"이라며 비판의 메시지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