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가 다 싫어서 절망하는 당신에게

입력
2021.10.27 04:30
26면

대선 기사만 보면 진저리 나서 '도리도리' 고개를 젓게 되나요? '확 찢어버릴'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봐도 뽑을 사람이 없던가요?

놀라지 마세요. 다음 대통령은 그런 당신이 결정합니다.

간단한 산수예요. 최근 나온 여론조사를 볼까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간판을 달고 나오는 후보라면 그게 누구라도 찍겠다고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이 대략 35%씩입니다. 합해서 70%쯤이네요. 별별 고약한 허물을 보고도 지지하는 마음들이니, 좀체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가치에 매혹돼서든, 이익에 매수돼서든 말이죠.

70%는 말하자면 까진 패, 굳은자, 잡힌 고기예요. 게임을 끝낼 힘이 없어요. 대선 결과는 나머지 30%가 가릅니다. 당신이 거기 속해 있죠. 부담스럽겠지만, 당신이야말로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어요. 분노 혹은 사랑에 눈 멀지 않았으니까요.

사람은 복잡하게 나쁜 존재라더니, 이번 대선주자들이 딱 그렇지 않나요? (여기서 '나쁨'이란 당신의 세계관에 따라 부도덕함이거나, 무능함이거나, 경박함을 뜻하겠죠.) 선거는 표로써 대표자가 '되게' 하는 민주 절차입니다. '못 되게' 하는 것 역시 선거의 요긴한 기능이라는 거 아시나요? 비호감 월드컵이라 불릴 지경인 내년 대선에선 특히 잘 떨어뜨리는 게 중요합니다. 나쁜 후보 중에 더 나쁜 후보를요.

인류사에 새겨져 있듯, 나쁜 지도자의 해악은 즉각적이고도 파괴적입니다. 다행히 당신은 더 나쁜 지도자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지도자 복 지지리 없는 험한 시절을 살아온 탓, 어쩌면 덕분이죠. 당신들의 촉이 모여 집단지성이 되고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냉혹한 민심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나를 해치는 존재를 알아보는 건 생명체의 생존 본능이거든요.

대선은 생존 게임입니다. 대통령이 나쁜 통치를 하면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우수수 생을 놓쳐요. 당신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 거꾸러질지도 모르죠. 한국식 제왕적 대통령에겐 그런 힘이 있습니다. 나라 따위 어찌 되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0.01% 계급 태생이 아니라면, 대선은 바로 당신의 싸움입니다.

대선을 '승자'만 남는 경쟁이라고 하죠. '득표율'도 남습니다. 나쁜 승자의 득표율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당신은 그를 떨게 할 수 있어요. 오만을 단속하는 시늉이라도 할 거예요.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표변하는 거 보셨잖아요.

힘 빠지네요. 어쩔 수 없어요. 난세에 난다고 전해지기만 하는 영웅을 기다리는 것보단 당장의 힘을 모아 최고 악당의 출현을 막아야 해요. 그래야 5년을 덜 위태롭게 살 수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자기계발서 안에서만 진리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분명히 나빠집니다. 요즘 같은 대혼돈의 시절에 그저 냉소하는 건 무책임한 거예요. 쿨한 게 아니에요. 더 나쁜 후보를 자세히 따져 보는 수고를 하느니 차라리 기권하겠다고요? 민주 선거에서 기권은 정당한 권리입니다. 단, 알고 하는 기권이어야죠. 게으르기만 한 기권과 적극적 선택으로서의 기권은 다릅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고요? 한 표 차이로 역사가 바뀌겠냐고요? '설마'는 없어요. 대선주자들 면면을 다시 한번 보세요. 2022년 대한민국 대선에 불가능이란 이미 없어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최문선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