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1004섬’이라 자랑하는 신안의 주요 섬들이 해상 교량으로 잇달아 연결되고 있다. 가장 북쪽 임자도가 최근 섬 신세를 면했고, 군청 소재지인 압해도에서 암태도까지 천사대교를 연결하며 암태·팔금·안좌·자은도 4개 섬도 차로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025개(유인도 72, 무인도 953개)에 달하는 섬을 모두 다리로 연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매력을 간직한 보석이지만 빛을 발하지 못한 섬이 많다. 암태도 서쪽 비금도와 도초도 역시 꿰지 못한 구슬이다. 면 단위의 큰 섬이지만 차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접근이 불편해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 이제 막 흙 속에 묻힌 구슬을 닦아 윤기를 발하기 시작하는 섬이다.
암태도 남강선착장에서 비금도 가산선착장까지는 배로 40분가량 걸린다. 과정이 번거롭지만 아주 불편한 건 아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도선이 하루 17차례 오고간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다리로 연결돼 있어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다. 개별 여행을 위해서는 차량이 필수다. 편도 승선료는 성인 6,000원, 차량 2만4,000원.
비금도 가산선착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독수리 조형물이 외지인을 반긴다. 섬 모양이 새가 날아가는 형세라 비금도(飛禽島)다. 당연히 바닷새가 흔할 텐데 날짐승 중에서도 가장 용맹스러운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았다. 섬 남쪽 선왕산(255m)의 바위 능선에서 흘러내린 산세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듯 자못 우람하고 우아하다.
독수리 조형물과 나란히 염전에 물을 대는 수차 조형물이 있다. 비금도는 광복 후 섬에서 한국인에 의해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서 천일염 기술을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삼만이라는 인물이 기술을 전수하고, 손봉훈을 비롯한 7인이 조합을 구성해 1946년 3월 갯벌을 막아 시험 염전을 축조했다. 천일염 생산에 성공하자 너도나도 뛰어들어 1948년 무렵에는 450가구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염전을 일궜다고 한다. 이때 조성한 대동염전은 근대산업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됐다. 가산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드넓게 염전이 펼쳐져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인 소금밭에 파란 하늘이 담기고, 주변 갯벌에 자라는 함초에는 빨갛게 단풍이 물들었다.
육지의 이름난 관광지에 비하면 비금도의 관광지는 날것에 가깝다. 섬 동북쪽 용소저수지 주변에 조성한 용방죽 산책로는 그나마 최근 외지인을 겨냥해 조성한 ‘나름’ 관광지다. 연꽃은 졌지만, 아담한 편백숲으로 낸 산책로는 푸르름을 머금고 있다. 해송과 편백나무 사이에서 번들거리는 야자수 잎이 이국적인 곳이다.
비금도의 자랑은 무엇보다 넓고 한적한 해변이다. 섬 북측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첫구지해변, 논드래미해변, 명사십리해변이 잇따라 펼쳐진다. 차로 달려도 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지만 모래는 곱디곱다. 첫구지와 논드래미는 해안선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아담한 해변이고, 명사십리해변은 이름처럼 광활하다. 텅 빈 해안에 잔잔하게 밀려드는 파도만이 물결 무늬 그림을 그린다. 휴가철에도 한산하고 지금은 찾는 이가 거의 없다. 누구라도 발을 들이는 사람이 드넓은 해변을 독차지할 수 있다.
바둑 애호가라면 명사십리해변 뒤쪽 이세돌바둑기념관도 들러볼 만하다. 폐교한 대광초등학교를 기념관으로 꾸몄다. 교문 자리에 이세돌과 인공지능(AI) 기사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대국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내부는 이세돌의 형님이 운영하는 바둑교실로 운영되고 있다. 비금도 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바둑 천재 이세돌의 어린 시절도 엿볼 수 있다.
섬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하트해변’이 나타난다. 2006년 드라마 ‘봄의 왈츠’ 배경으로 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해안침식으로 형성된 바위 절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자그마한 해변이 잇닿은 지형이다. 하트 모양은 해안을 지나 해안도로 언덕배기에서 잘 보인다. 심장처럼 따스하게 곡선을 그리는 바다에 에메랄드 빛이 은은하다. 하트해변의 정식 명칭은 ‘하누넘해변’이다. 하늘과 바다만 보이는 언덕, 또는 거센 하늬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최근에는 뱃사공 ‘하누’와 그를 기다리는 ‘너미’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차량이 많지 않았던 탓에 섬 안의 도로 사정은 요즘도 열악한 편이다. 해안도로라고 하지만 임도를 겸한 시멘트 포장 길이다. 하트해변 전망대에서 고개를 넘으면 돌 담장이 예쁜 내촌마을이다. 대략 400년 전 형성된 마을로 낮은 돌담이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납작한 돌과 각진 막돌로 쌓은 석축이 더러는 담장이 되고 더러는 건물 외벽을 형성한다. 크기와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돌담을 넝쿨식물이 기어오르고, 그 위에 천연덕스럽게 박과 호박이 올라 앉았다. 자연스럽고 정감이 넘친다. 소담스러운 돌담 골목 뒤로는 선왕산의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그림처럼 걸린다.
도초도는 비금도와 해상 교량(서남문대교)으로 연결돼 있다. 섬을 가르는 바다 폭은 500m 남짓, 한강보다 좁다. 도초도에서 요즘 뜨는 여행지를 꼽자면 단연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다. 흑산도로 유배된 ‘천주쟁이’ 정약전이 유교적 출세를 꿈꾸는 섬 청년 창대와 티격태격 우정을 쌓아가며 ‘자산어보’를 저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섬 남쪽 중앙에 선왕산이 우뚝 버티고 있는 비금도와 달리 도초도는 중앙에 넓은 들판이 형성돼 있고, 섬 가장자리를 따라 고만고만한 산들이 마을과 들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다. 두 채의 초가로 구성된 자산어보 촬영 세트는 섬의 북서쪽,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그림처럼 잡았다. 특히 안방과 건넌방 사이 통마루는 양쪽으로 툭 트여 있어 바다 풍경이 액자처럼 걸린다. 여행객이라면 빠짐없이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다. 멍하니 바다를 응시하고 있으면 영화처럼 조선시대 어느 한적한 갯마을에 던져진 것처럼 무상무념에 빠진다.
영화를 찍은 이준익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 영화로 연출했다고 했다. 현란한 색을 배제하면 사물이나 인물의 본질이 더욱 뚜렷하게 전달될 거라는 의도다. 달리 해석하면 이곳 풍광이 스토리를 압도할 정도로 매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흑백의 스크린에서도 초가집 넘어 수면에 반짝이는 햇살은 숨겨지지 않았다. 멀리 수평선까지 올망졸망 이어지는 작은 섬들과 눈부신 갯바위도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내심 환상적인 노을을 기대하며 일부러 일몰시간에 맞춰 촬영지를 찾았다. 아쉽게도 먼 바다 끝, 하늘이 뚫린 부분에만 간신히 붉은 기운이 내비칠 뿐, 회색 빛 새털구름이 잔뜩 덮인 날씨였다. 무채색에 가까운 하늘과 바다에서 어렴풋이 푸른 기운이 감지된다. 화려함 대신 수묵화처럼 깊고 담백하다. 눈부신 색상에 현혹되지 않고 그윽한 내면의 바다를 응시한다. 컬러보다 깊고 선명한 흑백 영화의 힘이 현실로 전달된다. 촬영 세트를 기준으로 바다 맞은편은 얕은 구릉이다. 마을까지 이어지는 산비탈에 아무렇게나 자란 억새가 자연스럽게 가을 서정을 연출한다.
자산어보의 자산(玆山)은 흑산도를 의미한다. 도초도를 주 무대로 영화를 찍은 건 흑산도보다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도초도에 딸린 섬 우이도는 흑산도 귀양길에 정약전이 거쳐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초도 남쪽 끝에 시목해변이 있다. 항아리처럼 둥근 해안이 넓고도 아늑하다. 깨끗하고 고운 모래가 더없이 좋아 보이는데, 해변 끝자락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경애씨는 예전만 못하다며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항아리 목에 해당하는 바깥 바다에 제방을 쌓고 연결 도로를 내면서 오히려 모래가 줄었다고 한다. “전에는 찬거리가 아쉬우면 바로 앞에 나가 맛도 캐고 조개도 주웠는데 이제는 없어.”
모래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해송 숲도 원인으로 꼽힌다. 시목해변은 도초도 각급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다고 한다. 모래사장이 사막처럼 넓어 바다 방향으로 100m 달리기를 해도 닿지 못할 정도였는데 숲을 조성하며 폭이 그만큼 줄었다고 한다. “좋은 모래사장과 갯벌을 망가뜨려 놓고, 길가에 제초 작업하는 것도 허락을 받으라니 기가 찰 노릇이지.” 섬 일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다. 방풍림으로 조성한 숲에는 조붓하게 산책로가 나 있다. 사정을 모르는 여행객에게는 숲과 해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한적한 어촌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