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전환, 낙오없는 탄소중립을 위하여

입력
2021.10.12 20:00
25면

편집자주

바야흐로 ESG의 시대다. 기업, 증시, 정부, 미디어 등 모든 곳에서 ESG를 얘기한다. 대세로 자리잡은 'ESG의 경영학'을 하나씩 배워본다.



ESG경영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커질수록 많은 경영자들은 당황스러워진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도하는 변화와 혁신도 쉽지 않은데, 외부 요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대규모 투자일 뿐 아니라 별다른 수익마저 창출되지 않는 변화라면 반가울 리가 없다.

많은 ESG과제 중에 대부분의 기업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최근 세계적으로 거세게 몰아치는 탄소중립 문제에 관한 이야기다. 가까운 시일 내에 탄소중립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대기업에도 힘든 과제이지만 중소기업에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작게는 공장 내 보일러를 교체하는 일부터 크게는 기존의 생산설비 전체를 바꿔야하는 숙제가 생겼다. 그뿐이 아니다.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이 중단된다면 약 47%의 자동차 부품 회사들이 생존위기에 직면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존폐 문제만이 아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업체에 소속된 수없이 많은 근로자들도 일시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비단 자동차 업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에너지, 화학 업종의 거의 모든 기업과 석탄, 석유 관련 장비나 보관, 운송에 관련된 수많은 기업들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품 자체는 계속 생산하게 되더라도 각종 규제 강화로 인한 원가 상승과 대규모 수요 감소 등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기업이 많아지게 된다. 실로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문제이지만 우리는 준비가 거의 안 된 상태로 이를 맞이해야만 한다.

변화의 당위성은 느끼지만 막상 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기에 시간이라도 좀 더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한국이 얼마만큼의 속도로 탄소 중립을 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내린 결정을 두고 한국이 '기후 악당'인지 아닌지를 정의할 따름이다. '기후 악당'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두려움이다.

결국 우리 기업들은 변화 자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예정된 미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도태되거나 소외될 가능성이 많은 기업이나 탄소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직업 전환에 대한 문제는 '공정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EU에서는 그린딜 예산의 약 15%인 190조 원이 공정 전환 예산으로 책정되었다. 미국에선 기후 관련 투자의 40%인 800조 원이 공정 전환 관련 예산으로 책정되고 있다. 미래에 발생할 사회적 갈등 요소를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탄소 중립 그 자체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고민이 담긴 결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와 기업 모두 탄소 중립에 대한 체계적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다. 이제 곧 많은 대기업이 부품을 포함한 제품의 생산공정 전 분야에서 탄소 중립을 시도하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큰 갈등이 우려된다. 탄소 중립을 위해 준비가 잘된 협력업체를 선택하려는 대기업과 결과적으로 거래처가 없어지는 중소기업 간 갈등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기술과 자금이 부족한 대다수의 중소기업을 위한 '공정 전환' 정책에 정부와 사회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와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모두가 낙오하지 않고 전환에 성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형희 SK SUPEX추구협의회 SV위원장·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