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의 양 정상이 ‘신해혁명 110주년’을 맞아 또다시 날 선 ‘설전(舌戰)’을 벌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독립세력을 겨냥해 “조국을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면 반드시 인민으로부터 버림 받고 역사의 심판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인들이 (중국의) 압력에 굴할 것이라는 건 환상”이라고 응수했다.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최초 공화국(중화민국)을 세운 신해혁명을 촉발한 우창봉기가 일어난 1911년 10월 10일을 중국은 혁명기념일(중국)로, 대만은 건국기념일(국경절)로 각각 기념하는데, 최근 극도로 악화한 양안(중국-대만) 관계가 두 정상의 기념 연설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시 주석은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 중요연설에서 “대만 독립세력은 조국통일의 최대 장애물이자 중화민족 부흥의 심각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순전히 중국 내정인 대만 문제에 어떤 외부 간섭도 용납하지 않는다”며 “누구도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는 중국의 굳건함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날 34분간의 연설에서 ‘통일’을 12차례, ‘부흥’을 25차례 외쳤다. 서구 열강이 중국을 유린한 1840년 아편전쟁을 거론하며 “중국의 봉건 통치자가 유약하고 무능해 국가가 모욕을 당하고 인민은 재난에 처했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힘을 키워 왔다”며 “그때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건 가장 원대한 꿈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연설 후반, 대만 문제를 거론할 땐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가고 표정도 한층 매서워졌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해 “민족이 약하고 혼란스러워 생겨난 것”이라며 “역사 발전의 대세와 중화민족 부흥에 따라 반드시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국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역사적 임무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해혁명을 이끈 쑨원(손중산)의 발언을 인용, “중국 전 국민의 희망인 통일이 되면 행복을 누리고, 통일이 안 되면 피해를 본다”며 “도도한 세계의 흐름을 따르면 성하고, 거역하면 망한다”고도 지적했다. 중국의 부흥은 필연적인 만큼, 대만을 통일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평화’를 강조하는 언급도 있긴 했다. 시 주석은 “평화적 방식의 조국통일이 중화민족 전체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전제를 달았다. 10년 전 후진타오 전 주석이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면서도, “양안 간 적개심을 끝내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자”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방점은 달랐다. 시 주석에게 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전진과 부흥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했다.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규정한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유럽, 일본까지 끼어들어 간섭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차이 총통도 물러서지 않았다. 10일 건국기념일 행사 연설에서 그는 “우리의 주장은 현상 유지”라며 양안관계 긴장 완화를 기대하는 등 중국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진 않았으나 말 속에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특히 “대만인들이 압력에 굴할 것이라는 환상은 절대 없어야 한다”면서 사실상 전날 시 주석 연설을 정면 반박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기념식에서 “주권 확보와 국토수호를 견지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만은 경솔히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누구도 우리가 중국이 펼쳐 놓은 길을 택하라고 강요하지 못하도록, 계속 국방을 강화하고 스스로 방어한다는 결심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펼친 길은 대만을 위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길도 아니며, 2,300만 대만인의 주권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만과 중국은 서로한테 종속돼선 안 된다”며 “대만은 합병ㆍ주권침해에 저항해야 하고, 대만의 미래는 대만인 뜻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의 기념 행사에도 이런 기류는 녹아 있었다. 중국 관영 CCTV는 9일 기념식을 중계하면서 종전과는 달리, 인민해방군·무장경찰 대표단의 참석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군·경 관계자들의 모습도 수차례 클로즈업했다. 10일 대만의 쌍십절 행사에선 치누크 수송헬기가 사상 최대 크기(18mX12m)의 중화민국 국기를 달고 총통부 상공을 비행하는가 하면 △슝펑-2·슝펑-3(초음속 대함미사일) △톈궁-3, 톈젠-2(방공미사일) 등을 선보이며 국방력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