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만 삐끗하면 '쓰레기 늪' 속으로... 위험천만한 그들의 일터

입력
2021.10.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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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처리 노동자의 view



체감 온도 50도. 이마에서 쏟아져 내린 땀이 두 눈을 찌르자 따가움에 눈물이 줄줄 흐른다. 시야가 흐려진다. 어두운 장내가 뿌옇게 일렁인다. 오직 강렬하게 느껴지는 건 냄새다. 실시간으로 썩어 가는 음식물쓰레기 늪이 맹렬한 기세로 뿜어내는 악취. 이곳은 경기 하남시의 한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이다.

수도권 각지에서 운반돼 온 음식물쓰레기들은 이곳의 커다란 ‘구덩이’ 속에 모인다. ‘저장소’라 부르는 이 곳의 깊이는 약 5~6m 정도. 약 70t가량의 음식물쓰레기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바로 추락이다. 지난 7월, 부산 기장군에서 이런 '쓰레기 늪'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

음식물쓰레기, 생활폐기물 처리현장에선 못해도 두어 달에 한 번씩 추락 사고가 일어나고,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국 어디나 아찔한 ‘낭떠러지’ 구조라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바로 추락이다. 10년째 같은 방식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쓰레기 처리 현장, 한국일보 뷰엔(view&) 팀이 찾아갔다.


발밑은 ‘부글부글 끓는’ 음식물 진창... “지옥이 따로 없다”

지난달 16일 경기 하남시 신장동 유니온파크 지하의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여기 바닥 보세요. 미끄럽죠? 저도 여러 번 넘어졌어요. 여기서 ‘아차’ 해서 발이라도 헛디딘다? 그냥 떨어지는 거죠.” 이재식 전국환경시설노조 하남 지부장이 낭떠러지 같은 구덩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자가 직접 삽을 들고 바닥에 쏟아진 음식물을 퍼내 저장소로 던져 봤다. 그 순간 무게중심이 무너지며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찔했다.




이곳에선 밤새 쓰레기를 수거해온 트럭들이 저장소 입구에 후진으로 밀착 주차한 뒤 적재함을 기울여 쓰레기를 쏟아낸다. 작업자들은 적재함 내부에 남은 찌꺼기, 바닥에 떨어진 잔여 쓰레기를 일일이 삽으로 긁어내 저장소로 투척해야 한다.

정신 깜빡 놓았다간 '바로 추락'... 현장엔 밧줄조차 없었다

“음식물 수거차량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가게 되면 ‘냄새 풍긴다’는 민원이 들어와요. 그러니 무리를 해서라도 말끔히 비워야 하거든요. 차량을 좀 띄어 놓고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치우면 덜 위험하겠지만 늘 시간에 쫓기니 그렇게는 못하죠. 아무리 숙련된 노동자라도 삐끗하면 큰일 나기 십상이에요.”

구덩이에 추락할 경우 질식 위험이 크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늪과 같은 쓰레기 곤죽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부패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성 황화수소를 흡입해 사망하거나, 구조가 된다 하더라도 심한 화학화상을 입을 수 있다.

문제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곳에 추락을 방지할 난간이나 안전망 같은 안전설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다리나 로프 같은 구조 장비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선 ‘그냥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 안전 수칙의 전부다.


‘혐오’ 피해 지하에 숨은 쓰레기 처리시설

2013년 준공된 이곳 하남유니온파크는 철저히 지하에 숨겨져 있다. 지상은 워터파크를 겸한 대형 시민공원이다. 근거리에 종합 쇼핑몰이 있어 주말이면 가족단위 방문객으로 붐빈다. 그들의 발밑이 어떤 모습인지 아는 시민들은 드물다. 쓰레기처리장은 ‘명백한 혐오시설’이기 때문에, 지상에선 말끔히 자취를 감추어야 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재활용쓰레기 선별장, 하수 처리 시설 등이 지하에 일제히 모여 있는 이곳은 지상 시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위험하다. 부패물에서 발생한 유독가스, 악취 등을 걸러내는 정화환기시설이 있지만,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하다 보니 공기 질이 나쁠 수밖에 없다.

작업자들끼리는 “여기서 불이라도 나는 날엔 다 죽는다”는 자조 섞인 푸념을 농담처럼 한다. 가연성 유독가스에 불이 붙으면 소방인력이 바로 출동해도 이틀은 거뜬히 탈 거라는 게 작업자들의 생각이다. 쓰레기더미와 함께 지하에 온종일 머무는 이들은 두통과 피부염을 달고 산다.


사람이 떨어져도 구할 밧줄이 없어 “소방호스 잡고 나온다”

음식물쓰레기뿐 아니라 생활폐기물 처리시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트럭을 후진으로 낭떠러지에 근접시킨 뒤 적재함을 기울여 쓰레기를 쏟아내는 방식도 비슷하다. 다만, 음식물쓰레기 저장소의 깊이가 4~6m 정도인 데 비해, 생활쓰레기 저장소는 규모에 따라 9~10m로 더 깊다. 그런데도 방지턱의 높이는 두 뼘 남짓한 수준이다. 서울 마포구 자원회수시설 생활쓰레기 저장소는 트럭 바퀴가 겨우 걸릴 정도였다

“한 번에 많이 옮기기 위해 쓰레기를 압축해서 싣거든요. 적재함 구석구석에 압축된 쓰레기가 끼면 아무리 여러 번 털어도 이게 잘 안 나와요. 그러면 사람이 꼬챙이 들고 꺼내 떨어뜨려요. 가끔 충격을 줘서 빼내겠다고 차를 앞뒤로 움직이다가 트럭이 통째로 떨어지기도 하고요. 트럭이 확 들리면서 운전사가 저장소 입구 상단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죠. 사람이 떨어지면 급한 대로 물 뿌릴 때 쓰는 소방호스를 던져서 잡고 나오게 해요.” (김태헌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 위원장)


목숨 내놓고 일할 수밖에 없는 현장, 달라지지 않는 이유

추락 사고는 시설당 1년에 3~4차례씩 발생할 만큼 빈번하다. 쌓여 있던 쓰레기가 완충작용을 해 골절이나 찔림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다. 만약 사망 사고가 일어나도 잘 알려지지 않는다. 합의금과 위로금이 몇 번 오가고 나면 말끔히 잊힌다. 쓰레기 처리는 원청인 지방자치단체의 발주를 받아 하청업체인 민간위탁시설이 맡는데,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계약 갱신이 어렵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최대한 빠르게 사고의 흔적을 지우려 든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위험한 현장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민간 위탁시설 입찰 경쟁은 ‘가격’과 ‘효율’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공공기관에서 위수탁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정해진 도급비에 맞춰 얼마나 많은 물량을 처리해낼 수 있느냐’예요. 원청인 정부가 갑인데, 원청 자체가 하청업체에게 노동자들의 안전을 제대로 보호할 것을 요구하질 않아요.” (이재식) 2016년 이후 3년간 산재사고로 사망한 환경미화원 13명 중 12명이 민간위탁업체 소속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은 ‘일의 속도’ 앞에 매번 희생된다. 안전에 관한 지침도 원칙도 없다. 한 명이 위험에 처하면 다른 한 명이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취해야 하는데도 대응 방식을 모르니 우왕좌왕하다 상황을 악화시킨다. 추락한 동료를 구하겠다고 무작정 따라 들어갔다 함께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부산 기장군 추락 사고 당시에도 동료를 구하러 들어간 다른 노동자까지 중상을 입었다.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몸에 매달 ‘생명줄’ 하나면 된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줄사다리, 구명밧줄 등 최소한의 응급장비와 사고 발생 시 행동요령 등을 담은 매뉴얼이다. “관리자들은 대다수 노동자가 저학력이거나 고령,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전 교육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르쳐줘도 모를 것이다' 하고 넘겨짚죠. ” (김태헌)

현장 노동자들은 열전도율이 높고 부식되기 쉬운 난간보다는 건설 노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안전 블록’이 더 적합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전 블록은 작업자의 몸에 로프를 걸고 지지대에 고정해 추락을 방지하는 장치다. 작업자의 동선을 따라 늘어나거나 수축되는 일종의 ‘구명줄’로 추락 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에 보호 벨트와 조임줄까지 갖추면, 본인의 균형감각에만 의존하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고소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반드시 이와 같은 안전장비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안전블록은 주로 △4m 이상의 작업공간 △안전난간이 없거나 △안전발판이 없는 장소에서 사용된다.


"쓰레기 처리한다고 사람도 쓰레기인 것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내놓으면 그만인 '배설물'이다. 하지만 쓰레기 수거와 처리라는 도시의 배설 기능이 멈춘다면, 생활 터전의 윤기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코로나19가 강타한 지난 2년간 쓰레기의 양은 전국적으로 적게는 1.5배, 많게는 2배 이상 급증했다. 매일 무섭게 밀려드는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누군가의 일터가 한층 더 위험해지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없어도 되는 사람 취급만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이 지부장은 호소했다. “쓰레기 처리한다고 사람도 쓰레기 취급은 말아주세요. 우리의 목숨까지 쓰레기와 다름없는 건 아닙니다.”

독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10월 9일(토요일)부터 '뷰엔(view&)'의 고정 연재일이 '격주 목요일'에서 '격주 토요일'로 바뀝니다. '뷰엔'의 다음 연재일은 10월 23일입니다.



박지윤 기자
한아름 인턴기자
김지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