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2007년 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APEC을 OPEC(석유수출기구회의)으로 잘못 언급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호주)의 이라크 파병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오스트리아(Austria)로 칭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1987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후보시절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전술핵'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원자로 말입니까"라고 확인하는 바람에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대통령(또는 후보자)은 국정운영에 긴요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다수 국민의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이슈에 만물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대통령 후보자들의 빈번한 토론과 회견과정에서 발생하는 돌출 발언을 둘러싸고 중대한 정책기조에 관한 사안이 아님에도 경쟁자 간 정도를 벗어나 치고받는 양상은, 후보자가 국정비전을 알리고 유권자가 진정한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을 훼손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후보자의 한두 마디 말실수를 호재로 삼아 함량 미달로 비하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행태는 '최고 공직'을 선출하는 선거과정의 '막중함'에서 비켜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 분야의 세부사항에 약하다고 해서 후보의 총체적 역량을 쉽게 평가절하한다면 주객(主客)이 전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식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솜씨로 국정 최고책임자의 자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비록 시청자의 눈에는 세련되지 못했을지라도 국정의 흐름과 방향을 진정성 있게 정립하고 있는지, 이에 미진할 경우 심도 있게 파악하고 제시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운영의 미래 청사진에 대한 밀도 있는 '공론화의 장'이 과거 행적의 잘잘못을 둘러싼 지나친 책임공방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제라고 해서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판단과 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의 핵심 소임은 시대정신에 맞는 국정의 큰 흐름을 주도하면서 이를 실행할 역량 있는 인재를 발탁,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국가시스템을 원활히 가동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사가 만사'라는 교훈을 실천할 수 있는 후보를 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국민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선거 경쟁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선심성 공약'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특정 분야의 디테일한 가치에 경도되지 않고 종합적 국정운영의 틀 속에서 시대정신을 구현할 안목과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판별하는 용기가 긴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다른 입장을 경청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체화되어 있는지, 진정으로 협치를 통해 보편적 이익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고 균형감을 잃지 않는 국정의 조타수가 될 수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평생 군에 복무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민주당 스티븐슨 후보를 꺾고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게 한 동력은 늘 미소를 띠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담대한 외유내강형 성품에 더해 시대적 요구에 탄력적으로 부응할 줄 아는 탁월한 균형감각이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 대선 후보들은 상대방 깎아내리기, 말꼬리 잡기, 과거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아까운 토론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첫째,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안위를 보장하는 데 주력해야 할 전략의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둘째,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한국경제의 미래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대안을 밝히면서 셋째, 점증하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미래를 짊어질 청년세대가 직면한 불확실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방향을 호소하는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