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현금영수증·재산세 상담 등을 담당하는 민간위탁업체가 상담사 근무 인원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중간착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에서조차 중간 업체가 돈을 빼돌리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도 통화대기 시간이 3분 이상 걸리고 응답률도 뚝 떨어지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콜센터를 운영하는 A 민간위탁업체 상담사들로부터 제보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A 업체는 60명의 상담사와 관리자를 채용해 현금영수증·재산세 상담을 담당하는 ‘홈택스 1팀’을 운영하기로 국세청 국세상담센터와 민간위탁 계약을 맺었다. 매달 국세상담센터로부터 60명 분 인건비와 관리비 등으로 1억6,200여 만 원을 지급받았다. 연간 사업비가 20억 원에 달하는 위탁사업이다.
실제 A 업체에서 채용한 상담사와 관리자는 45~50명이었다. 이 업체의 올해 3월 실적표를 보면 관리자까지 포함한 총 근무자는 47명이었고, 지난해 조직도(48명)나 주간보고 문서(47명) 등에 표기된 인원 역시 50명이 되지 않았다.
이 업체는 원청(국세상담센터)에서 실시하도록 한 보안교육 출석부에 퇴사자, 육아휴직자의 이름을 넣고, 다른 노동자들이 허위 서명을 하도록 해 교육 인원을 부풀리기도 했다. 또 휴가자의 컴퓨터를 다른 노동자가 로그인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이 업체의 한 상담사는 “실제보다 많은 인원이 근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이런 방법을 써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국세청은 이 업체와 상담사 1인당 월 264만 원의 용역비를 책정했는데, 만약 15명이 적게 근무했다면 연간 최대 4억6,000만 원의 세금이 과다 지급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세금 낭비뿐만 아니다. 60명분의 일을 해야 하는 나머지 상담사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국민들도 제때 상담을 받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홈택스 상담센터의 통화대기 시간은 2017년 2분 16초였으나 지난해 3분 3초로 34% 증가했고, 통화 응답률은 75%(2017년)에서 지난해 69%로 낮아졌다.
업체 측은 고의로 인건비를 빼돌렸다는 의혹을 부인한다. A 업체의 관리자는 “업무는 힘든데 급여는 낮다 보니 퇴사자가 많아서 계약 인원인 60명을 채우지 못한 것이고, 지금도 계속 채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곳 상담사 등에 따르면 상담사들이 올해 7월 국민신문고에 인원 문제 등에 대한 고충사항을 접수하자 그때부터 업체가 직원을 갑자기 많이 채용하고 있는 것일 뿐, 최근 1, 2년간 상담사는 늘 45~50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국세청에서 지급하는 일반 상담사의 1인당 월 용역비는 264만 원인데, 업체의 관리비와 이윤, 4대 보험료 등을 제한 후 월 급여는 세후 193만 원 정도다. 처우가 열악한 것은 맞지만, 잦은 퇴사로 인해 매달 계약 인원보다 10여 명이나 적은 인원이 일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낮다. 국세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까지 월별 퇴사자는 0~4명으로 7개월간 총 15명뿐이었다.
또 휴가자 대신 다른 상담사가 상담 프로그램에 로그인을 하도록 한 것에 대해 A업체 관리자는 “국세청 정보보안 정책 때문에 오래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컴퓨터 IP가 막혀, 그걸 방지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로그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로그인하지 않으면 IP가 닫히는가'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IP가 닫힐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수년간 허위 로그인을 해왔다는 얘기다.
원청인 공공기관들의 방관 속에서 인원 부풀리기로 중간착취를 하는 방식은 흔하다. 정부 산하기관의 한 민간위탁 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는 “상담 근무 인원이 많을수록 원청에서 돈을 많이 받으니까 퇴사한 사람을 퇴사 처리하지 않는다거나 휴직자를 일하는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며 “이런 사람들 아이디로 허위 로그인한 뒤 도급비를 허위 청구하는 경우가 과거엔 많았고, 최근까지 그렇게 한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콜센터뿐 아니라 민간위탁 폐기물 수거업체 등에서도 유령 직원을 넣어 인건비를 빼돌리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국세상담센터 관계자는 ‘상담사에게 지급된 임금을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민간업체의 경영에 대한 지나친 간섭인 것 같아 안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의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엔 “위탁기관(원청)은 개별 노동자에게 실제 지급된 임금을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임금 지급 확인이 원청의 의무라는 점을 지적하자 뒤늦게 “착오가 있었다”며 “A 업체로부터 임금지급 내역을 받아서 확인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실제 근무 인원이 60명이 안 되는데도 매달 60명분 도급비를 지급하는 데 대해서는 “연말에 1년 치 상담사 총 결원 비율을 계산해 계약 인원의 5%(3명) 이상일 경우 해당 비용은 차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원 비율이 5% 이상이면 도급비를 차감하도록 위탁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세상담센터가 최근 4년 동안 연말에 A 업체의 도급비를 차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A 업체의 문제점은 입찰 때부터 감지됐다. A 업체가 올해 콜센터 입찰에 참여하면서 국세상담센터에 제출한 ‘입찰 제안서’에는 ‘상담사의 집단화 방지 및 발생 시 대처방안’이 들어 있었다.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원천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단계별 대처방안까지 상세히 제시했다. 1단계에서는 ‘상담사 집단행동 주동자 격리’ 등 노동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내용을 버젓이 포함시켰다.
민간위탁 가이드라인은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 조항을 둬 “위탁기관은 수탁기관 노동자의 노동3권을 제약하지 않도록 계약서 작성 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세상담센터는 노동3권을 제약하겠다고 밝힌 A 업체를 선정했다. A 업체는 2016년부터 6년 동안 매년 이 계약을 따냈다.
장혜영 의원은 인원 부풀리기에 대해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가 예산을 횡령한 중대 범죄이자 적정 인원을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현재 근무하는 상담사에게 과중한 업무 부담을 지운 중간착취”라고 지적했다. 또 '집단화 방지' 문서에 대해서는 "사실상 노동조합 설립을 막는 조항을 넣어 계약하겠다는 민간업체나, 이를 묵인한 국세청 모두 부당노동행위의 공범"이라며 "국정감사를 통해 계약 과정에서 노동법 위반 행위가 확인되면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