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버린 주민들 <2부>방치된 시스템 ⑧회한과 바람<끝>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문화 혜택과 높은 집값을 누리는 서울 등 대도시를 떠받치려, 소각로·공장·매립장은 인구가 적은 주변부로 떠넘겨진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고, 이들은 오염으로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어간다. 한국일보는 지난 10년 동안 환경부에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8개 지역의 주민들을 만나 7회에 걸쳐 보도했다. 수많은 쟁점과 문제점이 있어 한두 가지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향후 정책에 참고할 만한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소회를 마지막회에 모아봤다.
"어느 새벽 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인근의 공장을 지나는데 온 마을에 보랏빛 연기가 자욱한 겁니다. 냄새가 말도 못합니다. 마을에 37명이 사는데 12명이 암 환자예요. 암 사망자만 4명이고요. 아무리 주민 나이가 있다 해도 이거 이상하다, 마을 회의를 열어서 왜 이렇게 됐나 이유라도 알자고 지난해 3월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넣은 겁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1년 이상 걸린다고 해요. 올해 6월에 중간 보고회가 있었는데, 주민 중에는 제가 참석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열려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혼자 갔어요. 그 자리에서 환경부, 연구 담당 교수진 등이 설명하는데 도무지 뭐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마을 대표로 왔으니 돌아가서 설명을 해줘야 하건만, 환경 측정 자료가 어떻고 화학물질 취급현황이 어쩌고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손을 들어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겁니까. 어느 정도로 해가 간다는 건지 주민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요. 주민들이 당사자인데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실컷 해놓고 결론을 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잖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도 했습니다. 검사를 성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오염 조사를 하겠다면서 낮에 공장 굴뚝에 기계를 설치해서 두어 시간 측정하고 말던데, 주민들이 보기엔 낮보다 새벽에 더 오염물질이 많이 나옵니다. 온종일 검사를 해도 밝혀질까 말까인데, 이래서야 주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주민들이 업체의 불법과 건강이상을 호소해도 행정기관의 벽이 너무 높아요. 2017년 환경부 조사에서 업체가 과다소각 등 불법을 일삼았다는 것이 적발됐고, 주민들은 영업허가 취소를 청주시에 요청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폐기물관리법 조항을 찾아서 민원을 제기한 거죠. 그런데 청주시에서는 두 달 넘게 취소를 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어요.
결국 주민들이 환경부를 직접 찾아갔어요. 이 과정에서도 높은 벽을 느꼈습니다. 첫 방문 때는 주무관, 두 번째는 사무관, 세 번째는 과장이 나왔고, 결국 네 번째 방문이 돼서야 국장 면담이 이뤄졌지요.
그런데 환경부에서는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다시 주민들이 알아보니 지방자치단체 재량으로 허가취소를 내리면 된다고 해요. 다시 청주시에 문의해보니, 환경부에 유권해석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또다시 환경부에 가서 유권해석을 빨리 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환경부는 '우리는 권한이 없다. 청주시가 허가취소를 하려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더라고요. 이걸 녹취해서 청주시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이장단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더니 그제서야 허가취소가 났습니다. 주민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적극적으로 행정처리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매일 매캐한 공기를 마시며 사는데, 시나 구청에서는 '대책이 없다' '이주는 곤란하다'고만 반복해요. 그런데 여기 정말 숨 쉬고 살 수가 없어요. 대통령에게 청원이라도 내야 하는 건지 막막합니다.
몇 달 전 눈이 아파서 안과 갔더니 안구 안쪽에 이물질이 있다고 제거해야 한대요. 빼 보니 쇳가루가 나왔어요. 의사가 그냥 뒀으면 실명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철렁하더라고요. 지금도 한쪽 눈이 잘 안 보여요. 두 달에 한번씩 눈알에 주사도 맞습니다. 사월마을에서 암이나 폐 문제도 심각하지만, 이런 질환은 전혀 고려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질환 문제도 심각해요. 저는 우울증 약 1년 먹었어요. 잠도 잘 못 자요. 새벽 6시까지도 눈이 말똥말똥해서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에 들어요. 건강영향조사 때 마을 주민 86명 중 21명(24.4%)이 우울증이 있대요. 4명 중 한 명꼴이에요.
주택을 팔고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도 못합니다. 전국에 쇳가루 마을이라고 소문이 나서 집을 팔고 싶어도 팔리지도 않아요. 자력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이주라도 해달라는 겁니다.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건강영향조사 청원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환경규제가 얼마나 허술했겠어요. 당장 공장을 가동하는 게 급선무였겠죠. 오염물질 배출을 관리하고 주민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은 20~30년간 묵혀왔던 건강 피해가 드러나는 때예요. 우리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을까요.
환경성 질환은 고민할 지점이 많아요. 암은 잠복기가 굉장히 길어요. 조사 시점에 암 환자가 적으면 암 발병률이 낮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또 암 발병에 대한 오염물질의 기여도가 1%이면 인과성이 인정 안 되나요? 조사 시점에 사업장이 갑자기 오염물질 저감장치를 설치하면, 그 조사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 환경부는 이런 논점들에 전부 가장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태도를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점마을 사례는 이를 정리할 수 있는 아주 드문 기회였어요. 환경부는 장점마을 문제도 인과성을 부정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주민들이 대항하고, 이슈를 만들고, 지역사회와 민관협의회도 적극 도와서 겨우 환경부의 태도를 바꾼 거예요.
다른 어떤 지역에서든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아요. 정부가 여기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방어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앞으로도 인과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없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환경 오염과 관련한 규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법도 만들고 지침도 만들어야 해요.”
"장점마을 인근 마을이 지원에서 배제된 데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그냥 우는 아이에게 떡 주는 거랑 똑같아요. 장점마을은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넣었지만, 인근 마을은 참여하지 않았죠. 그 차이뿐이에요.
2013년 제가 시민단체 활동할 때 민원과 관련해 금강농산(발암물질 내뿜은 비료공장)을 방문한 적 있는데, 그때도 인근 마을 주민이 민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해결 기미도 없으니 전부 '해봤자 안 돼'라는 분위기가 생긴 거죠.
시가 주민 보상을 하려고 했다면 환경부에 청원 넣을 때도 당연히 옆 마을까지 파악해서 조사를 하려 했을 거예요. 환경부가 익산시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했을 테니 결국 익산시가 나서야죠. 청원을 낼 때 이런 부분도 고려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거죠."
“현행 환경보건법에는 환경부 장관이 조사 결과에 따라 환경매체와 환경유해인자를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17조 2항 2)고 돼 있어요. 이렇게 원론적인 얘기만 있고 보상체계가 없습니다.
환경오염에 의한 건강 피해가 발생했을 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사례별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해요. 빠른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하는 시기는 이미 장기간의 오염노출이 진행된 상태지요. 질병 원인을 밝히는 데도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사후 지원에까지 시간이 걸리면 피해자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은 사고 유형별로 적정 보험금액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 문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다단하고 지원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유형화가 결코 쉽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분류를 해 둔다면 주민 지원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환경오염 문제가 터졌을 때 우선적으로 일정수준의 지원을 할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요. 지금처럼 인과관계가 판정될 때까지 지원이 전혀 없으면 피해자들은 생계가 막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간 강원 시멘트 공장 인근 주민들이 업체에 피해 배상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법정에서는 패소를 하는 등 분진과 질병의 인과관계 입증은 기본적으로 어렵습니다. 동해항 주민들이 주로 앓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적어도 10~20년의 꾸준한 노출로 생깁니다. 단기간에 고농도 유해물질 노출로 생긴 질환은 오히려 증명하기가 쉽지만 오랫동안 저농도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위해할 정도의 농도는 계속 모니터링하지 않았다면 노출 자체도 밝히기 어렵습니다.
또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특정 질환, 수은에 의한 중독처럼 특징적인 질환이 아니라 분진 외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생겨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동해항은 영향이 없진 않을 것 같은데 건강영향조사에서 주민 건강과의 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하니 주민들로서는 답답하고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협점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처럼 선제적으로 구제를 해주는 등 불만을 해소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대구 안심연료단지 진폐증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담당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진폐증 집단소송은 처음이었죠. 1989년 서울 중랑구의 연탄공장 옆에 거주하다 진폐증에 걸린 고 박길래씨가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처음으로 공해병을 인정받은 후 유사한 집단소송이 제기된 적도, 법적으로 인정된 사례도 없었어요.
1990년대까지도 석탄은 주된 연료였고 주거지와 인접한 연탄 공장도 상당히 많았는데, 왜 소송이 없었을까요. 당시 석탄ㆍ연탄의 비산먼지가 호흡기에 영향이 없는 것처럼 홍보가 됐던 것이 1차적인 문제였고요. 정부나 기업이나 환경의식이 부족했죠. 석탄 사용 감소와 함께 진폐증에 대한 의학적 연구도 끊겨서 피해자들의 정확한 진단조차 쉽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이 환경피해 소송을 제기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연탄공장으로 인해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됐다는 역학적 입증뿐 아니라 공장 분진이 특정인의 진폐증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는 의학적 입증까지 해야 해요. 피해자들 홀로 엄두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죠.
환경 피해에 대한 소정의 소명 정도만으로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만 있었더라도 관련 소송은 훨씬 많았을 겁니다. 또 숨겨진 환경피해가 더 밝혀질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사월마을 건강영향조사 중 주거환경 적합성 평가에 참여했습니다. 사월마을에는 지금 약 200개의 공장이 주거지역과 인접해 있죠. 독일은 공장 종류별로 위험도를 7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별로 주거지와 100~1,500m 이상 떨어진 곳에 유해물질배출시설을 설립하도록 하고 있어요. 국내에는 거리 간격에 대한 정부 기준이 전혀 없습니다.
유해물질배출시설의 밀집도 관련 규정이 없어서 공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한 기준을 마련해야 해요.
또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하면서 주거환경 적합성 평가도 병행해야 합니다. 청주 북이면 건강영향조사가 시작되기 전, 주거환경 적합성 평가도 함께하자는 제의가 왔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는데,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주거환경도 평가해야 합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2부>방치된 시스템
⑤유해물질, 운에 맡긴다?
⑥두 번 죽이는 조사 결과
⑦이주대책은 언제
⑧회한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