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대출 옥죄기'에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자, 신용등급 1·2등급 수준의 고신용 차주들도 상호금융과 저축은행 등 2금융권 대출 비중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도미노 현상으로 2금융권을 주로 이용하던 중·저신용자들은 대부업 이나 개인 간 (P2P)금융 서비스로 밀려나고 있지만, 여기서도 돈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민형배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농협·수협·신협 등 상호금융업권에서 나간 가계대출(37조 7,165억 원)의 절반에 가까운 46.53%(17조 5,499억 원)가 1·2등급 수준의 고신용자에게 제공됐다. 지난해(26.75%)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정책 상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회 정무위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7월 정책형 중금리 대출 상품 '사잇돌대출'을 통해 공급된 보증액 1조 3,047억 원 중 8,940억 원(68.5%)이 고신용자인 1~3등급에게 지급됐다. 반면 5등급 이하 중·저신용자에게는 21.4%에 불과한 2,797억 원만이 제공됐다.
고신용자들이 2금융권으로 몰리며 가계 대출 증가세가 지속되자 금융당국은 이달 들어 2금융권에 대출 한도 관리, 대출 총량 조절 등을 철저히 당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15일 가계대출 규모가 큰 카드사들을 불러 경고 메시지를 던졌고,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업계와 생명·손해보험협회 등에 신용대출 한도를 낮추도록 권고했다. 27일에는 금감원이 증권사 임원들을 불러 신용거래 한도 관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고신용자들이 2금융권 대출 비중을 늘리자 중·저신용자들은 대부업이나 P2P금융 등 3금융권으로 밀려나고 있다. 7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의 대출금액이 전체 상호금융 신규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6.72%에서 올해 상반기 10.5%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저신용자들은 여기서도 돈을 구하기 쉽지 않다. 최고금리가 20%로 낮춰지고 대부업체들이 신규 신용대출 비중을 크게 줄이고 있어서다. 지난달 정부가 우수 대부업체 21곳을 선정해 은행권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하면서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업체들은 저신용자 대출 취급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2금융권 대출규제를 강화할수록 저신용 차주들은 제도 밖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출 절벽에 차주들의 볼멘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당국은 내달 더욱 강한 대출규제를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언급되고 있는 방안 중 하나가 2금융권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로, 만약 시행된다면 중·저신용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내년 이후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했던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날 8개 정책금융기관장들과의 간담회에서도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총량·질·증가속도를 엄격히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