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북관계 향방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입’에 달렸다. 혈육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북정상회담까지 거론하면서 관계 개선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김 위원장의 최종 ‘승인’ 절차만 남은 것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25일 담화에서 “개인적 견해”라는 점을 부각하며 최고지도자의 의중과는 거리를 둬 김 위원장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북한의 진정한 대화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속내는 빠르면 28일 열릴 최고인민회의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최고인민회의 14기 제4차 회의가 평양에서 예고돼 있다.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는 헌법ㆍ법률 개정 등 북한의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상위 주권기관. 하지만 김 위원장의 ‘심중’을 제도적으로 추인하는 것이 실질적 역할이다. 김 위원장은 참석 대상인 대의원은 아니지만, 이 기구를 메시지 발신 창구로 활용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연단에 오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는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미국이 제3차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화 손짓을 보낸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주목하는 건 남북관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확실한 전례가 있어서다.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한 그의 신년사는 이후 ‘한반도의 봄’을 알린 신호탄이 됐다. 불과 일주일 뒤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고, 같은 해 2월 김 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필두로 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파견됐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그해 4, 5월 판문점 1ㆍ2차 남북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결실을 봤다. 9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직접 찾기도 했다. 그의 입이 숨가쁘게 돌아간 2018년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이번에도 공개석상에 나타나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언급한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종전선언’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등에 공감하고 구체적 실행 계획을 공표할 경우 남북관계는 다시 화해 모드로 급격히 전환될 수 있다. 반대로 그가 회의에 불참하거나 참석해도 별다른 관련 메시지를 내보내지 않으면 우리 정부도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은 “김 위원장의 결단이 엿보이면 하반기 국면 전환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발언 내용과 수위에 따라 4차 남북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