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시행사인 '화천대유'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초기 비용 351억 원을 지원한 인물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으로 파악됐다.
최 이사장 측은 자신이 화천대유가 아닌 투자자문사 '킨앤파트너스'에 돈을 빌려준 것일 뿐 화천대유 등 대장동 사업에 대해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화천대유-킨앤파트너스-최 이사장' 사이의 금전거래를 추적해 보면, 최 이사장이 화천대유 존재와 대장동 사업 초기 상황에 대해 상당부분 인지하고 투자한 정황이 엿보인다.
2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화천대유는 대장동 사업 PF를 구성하기 위한 초기 비용으로 350억 원을 사용했다.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도 지난 18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사업협약이행보증금에 72억 원, 각종 인허가 용역비 125억 원, 자산관리 및 사업관리 수수료 95억 원, 기타 58억 원 등 약 350억 원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초기 비용 350억 원은 화천대유가 킨앤파트너스라는 투자자문사에서 빌린 돈이다. 화천대유는 2015년 킨앤파트너스에서 이자율 6.9%에 291억 원을 빌렸고, 2017년 이자율을 25%로 올리고 차입금도 351억 원까지 늘어났다. 화천대유는 2018년 해당 '대여 계약'을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시중은행에 이어 킨앤파트너스를 3순위 우선수익자로 설정해 955억200만 원을 보장해주는 '투자 계약'으로 전환했다. 화천대유가 기존 차입금인 351억 원을 투자금으로 인식해 사용한 것이다.
주목할 지점은 킨앤파트너스가 화천대유에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2015년부터 감사보고서상 '개인3'으로 표시한 최 이사장에게 이자율 10%에 400억 원을 빌렸다는 점이다. 대형금융사의 부동산 투자담당 간부는 "킨앤파트너스가 당시 수백억 원을 여유롭게 내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킨앤파트너스는 최 이사장에게 빌린 400억 원으로 화천대유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 측은 킨앤파트너스에 400억 원을 빌려준 건 인정하면서도, 화천대유 및 대장동 사업 전반에 대해 직접 관여하진 않았다는 입장이다. 최 이사장 측은 "최 이사장의 금전거래 대상은 킨앤파트너스로, 화천대유와는 직접 거래하지 않았다"며 "킨앤파트너스 대표와의 인연으로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투자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5∼2018년 킨앤파트너스 대표였던 박모씨는 최 이사장의 모친 박계희 여사를 기리는 우란문화재단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바 있다. 킨앤파트너스 사내이사들을 SK그룹 행복에프앤씨재단 대표나 이사들이 겸직하고 있어 킨앤파트너스는 SK그룹과도 연관성이 있다.
최 이사장은 킨앤파트너스에게 돈을 빌려줬지만, 자신의 돈이 킨앤파트너스를 통해 화천대유에게 흘러갈 것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킨앤파트너스는 감사보고서에서 최 이사장에게 빌린 돈에 대해 '화천대유의 아파트개발 사업 투자금 재원으로 차입했으며, 해당 차입금은 사업 투자금 전액회수일로부터 5영업일이 경과한 날(2022년 3월 17일)까지 상환하는 조건'이라고 명시했다.
금융권에선 △킨앤파트너스가 차입 목적을 화천대유에 빌려주는 것이라고 공개했고 △최 이사장에게 상환하는 날짜도 화천대유 사업 투자 회수일을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에, 최 이사장이 화천대유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최 이사장이 대장동 사업에 대해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또 있다. 킨앤파트너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최 이사장에게 돈을 빌리면서 제공한 담보가 '천화동인 4호의 수익'으로 기재돼 있다. 천화동인 4호는 대장동 개발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성남의뜰'의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다.
실제로 킨앤파트너스는 개인에게 60억 원을 빌려주면서 천화동인 4호의 대장동 개발 투자 수익권에 질권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담보를 잡았다. 킨앤파트너스는 이 담보를 최 이사장에게 넘기며 돈을 빌린 것이다.
금융권에선 최 이사장이 400억 원이라는 큰돈을 빌려주면서 담보 내용도 몰랐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천화동인 4호의 역할과 대장동 사업에 대해 점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PF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 이사장이 킨앤파트너스를 통해 화천대유의 PF 초기 비용을 댄 전주(錢主)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최 이사장 측은 "수익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이라면 대여가 아닌 최 이사장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