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도 웃어서도 안되는 소녀... 살아있는 신 '쿠마리'

입력
2021.09.20 11:00


네팔 카트만두에서 ‘옌야(인드라 자트라)’ 축제가 한창이다. 비의 신에게 풍작을 기원하고 망자를 기리는 기간으로, 추석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옌야는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의 연례 행차를 볼 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네팔 일부 도시에서는 초경 전의 여자 아이를 힌두교 여신 ‘탈레주’의 화신으로 섬기는데, 이들을 쿠마리라고 부른다. 이중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카트만두의 쿠마리가 옌야 기간 중 3일에 거쳐 시내를 행차한다.

네팔의 쿠마리 제도는 오랜 기간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의 숭배를 받으며 종교 화합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나이에 맞지 않는 생활 규범을 강요받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쿠마리들의 처우가 알려지며 국제사회의 비판이 일고 있다.




카트만두의 쿠마리는 율법상 공식 행사 참석 외에는 늘 사원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사원 안에서 개인 교습을 받는다. 사회성이 발달하는 나이에 극히 제한된 사람들하고만 교류해야 하는 것이다.

쿠마리는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표정을 강요받는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에게 불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의 지위에서 내려온 쿠마리 출신 여성들 중에는 이후의 삶에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 속 쿠마리들은 늘 누군가에게 업혀 있거나 가마를 타고 있다. 쿠마리는 신성한 존재이기에 땅을 밟으면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인데, 사원 안에 앉아 있을 때도 발밑에 발판을 둘 정도다. 그러나, 수년간 다리 근육을 쓰지 않아 쿠마리를 은퇴한 후에는 스스로 걷기 위해 재활훈련까지 거쳐야 한다.

카트만두에는 쿠마리를 수호하는 ‘바이라바’와 ‘가네샤’의 화신인 소년이 둘 있지만, 이들은 사원에 갇혀 있지 않고 부모와 함께 집에서 생활하며 학교에도 다닐 수 있다. 다른 도시의 쿠마리 역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지만, 유독 카트만두의 쿠마리만은 그 상징성 때문에 여전히 엄격한 규범에 얽매어 있다.






이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