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기독교·천주교·동학까지… 종교 통합 ‘아름다운순례길’

입력
2021.09.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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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고찰 금산사와 호남 천주교 발상지 초남이성지

전북에 ‘아름다운순례길’이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톨릭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라면, 아름다운순례길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뿐만 아니라 동학 유적까지 연결하는 종교 통합 순례길이다. 여러 종교인이 화합을 모색하는 여정이니, 마음의 평화와 안식이라는 종교 본래의 역할에 가장 부합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김제 금산면은 ‘수류금산’이라는 별도의 순례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좁은 지역에 종교 유적이 두루 포진하고 있어서다. 맏형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 금산사다. 모악산 서쪽 자락의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유적답게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을 비롯해 20여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의 대적광전보다 우측의 3층짜리 미륵전(국보 제62호)이 눈길을 잡는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23년(764)에 거대한 미륵불을 만든 후 뒤를 이은 혜공왕 때 건물을 올렸다고 알려졌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천장까지 통으로 뚫린 3층 목탑이다. 가운데 미륵불을 양쪽에서 보살상이 협시하는 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미륵불 높이가 11.82m에 이르니 건물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찰의 면모는 곳곳에 배어 있다. 입구에서 1㎞가량 이어지는 계곡 주변은 울창한 숲이자 잘 가꾼 정원이다. 요즘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으로 꽃무릇이 발갛게 피어 가을 산사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사찰 입구 금산리 마을 한가운데에 금산교회가 있다. 1908년 데이트 선교사가 지은 한옥 교회다. ‘ㄱ자형’ 건물 내부는 통간으로 뚫려 있고, 강단을 중심으로 남녀 신도의 좌석이 분리돼, 유교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초기 한국 교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근의 증산법종교 영대(靈臺)와 삼청전(三淸殿)도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영대는 1949년 세운 건물로 증산상제 부부의 무덤을 보호하는 묘각이다. 삼청전은 증산미륵불을 봉안한 건물로, 위층 살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미륵불의 안면에 비추어 장엄한 빛을 발하도록 설계했다. 증산법종교는 조선 고종 때 강일순이 정읍에서 유불선을 통합해 세운 증산교 계열의 종교다.

금산면 소재지의 원평집강소는 동학과 관련된 시설이다. 1882년 지은 건물을 백정 동록개가 당시 대접주였던 김덕명에게 헌납해 집강소로 이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면사무소와 원불교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으나1990년대 이후 폐가로 방치되다 철거의 운명을 맞았다. 현재는 그 자리에 단출하게 초가를 복원해 놓았다.

김제 북쪽 완주 이서면으로 이동하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천주교 초남이성지가 있다. 유항검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전라도 천주교의 발상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지난달에는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 윤지충(1759~1791)과 권상연(1750~1791)의 유해가 처형당한 지 230년 만에 발굴돼 전국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고종사촌 정약용을 통해 천주교를 접한 윤지충은 모친의 제사도 지내지 않고, 외사촌 권상연과 함께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기까지 해 유교 국가 조선에 큰 파문을 남겼다. 이 소식이 조정에까지 전해져 둘은 1791년 11월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당했다.


초남이성지는 초남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아담한 시설이다. 한옥 본당과 고해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성모상이 자리 잡은 연못을 황토색 담장이 소박하게 감싸고 있다. 바로 앞은 드넓은 호남평야다. 저녁 무렵이면 지평선 위로 번지는 노을이 특히 이국적이다. 윤지충ㆍ권상연의 유해와 이를 증명하는 백자사발지석이 출토된 바우배기 순교자 묘지는 이곳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완주군 산골짜기 화산면의 되재성당도 천주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1895년 한국 천주교회로는 두 번째로 완공된 본당이자 최초의 한옥 성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전소돼 현재는 1954년 지은 한옥 공소가 대신하고 있다. 성당이 자리한 원승마을은 지금도 깊은 산골이어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조용히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순례지다.

김제ㆍ완주=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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